총선이 다가오기는 하나 보다. 정치권은 유권자들에게 올릴 성찬을 차리는 데 열심이다. 내년 4월 치러질 총선은 여야의 명운이 걸린 전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이기 때문이다. 현 정권이 국정 운영에 무소불위의 힘을 얻느냐 아니면 레임덕에 빠지느냐의 갈림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여야는 더더욱 그럴듯하게 밥상을 차리려 사력을 다하고 있다.

김준기 뉴스콘텐츠부문장
김포시 서울 편입 추진, 공매도 금지, 일회용품 규제 폐지, 주식양도소득세·상속세 인하 추진…. 정부·여당이 내놓는 메뉴들이다. 김포가 서울이 되면 고양은, 부천은, 구리는, 광명은? 일부 개인투자자들이 요구한다고 국제 기준인 공매도를 한국 주식시장에서만 금지? 기후위기 대응이 세계 표준이 되는 시대에 일회용품 규제를 더 강화해도 모자랄 판인데? 안 그래도 감세 정책으로 세수 부족에 시달리며 나라살림 적자가 커지는데 또 부자감세? 선거 때면 으레 대중을 유혹하는 선심성 정책들이 나오는데, 이번엔 상태가 더 심해졌다.
그 와중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가히 자학적이라 할 수 있는 정치혐오성 구호가 재료로 등장했다. 청년층을 겨냥해 총선용으로 준비했다는 “정치는 모르겠고, 나는 잘 살고 싶어”라는 현수막은 정당이 앞장서 정치 무관심을 부추기는 꼴이다. 민주당은 당 내외의 쏟아지는 비판에 해당 현수막을 폐기했지만 정치가 갈 데까지 갔구나라는 한숨이 쉬어질 만하다.
총선 앞으로 돌진하는 우리 정치판에서 나라와 사회의 발전을 도모할 건전한 이상을 호소하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대신 유권자들의 말초적 감성과 즉자적 욕망을 낚시질하는 데는 열중인 모양새다. 여당의 선심성 정책이나 야당의 정치혐오 정서팔이나 대중의 인기만 좇는 포퓰리즘의 전형들이다. 포퓰리즘의 특징 중 하나는 사회나 국가의 과제에 진정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혹할 만한 주장만 목소리 높여 외친다는 것이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여야는 이제껏보다 더 세고, 더 화끈한 메뉴들을 들이밀 것이다. 여야가 극단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포퓰리즘 경쟁이 과열되면 유권자들은 더더욱 양극화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한 공동체의 발전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현 한국 정치·사회 체제의 기원인 1987년 ‘6월항쟁’은 1968년 프랑스의 ‘68혁명’과 닮은 점이 있다. 68혁명은 기성 권력의 권위주의와 사회 부조리 등에 반발해 일어난 사회변혁운동이다.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의 정치와 사회,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6월항쟁이나 68혁명이나 청년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주축이 돼 민주주의와 자유를 외쳤다. 무엇보다 두 운동을 통해 시민들이 어두운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했다는 데 가장 중요한 공통의 의미가 있다.
얼마 전 작고한 프랑스의 경제학자 다니엘 코엔은 2018년에 쓴 <유럽을 성찰하다>(원제 ‘시대가 변했다고 말해야 한다’)에서 68혁명 이후 세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탐구했다. 코엔은 “좌파는 서민을 받아들인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위기에서 서민을 보호하는 데는 실패했고, 도덕 회복 정책으로 선출된 우파는 서민들을 탐욕의 제단에 갖다 바쳤다”며 진보와 보수 모두 유권자들을 실망시켰다고 결론 내렸다. 그 이중 실패의 산물이 포퓰리즘이고,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최절정에 이르렀다. 그렇게 그는 “시대는 변했다. 하지만 시대는 예상했던 방향으로 변하지는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한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피와 땀으로 꽃피운 6월항쟁의 희망이 지금 우리 시대 이런 극단적 대결의 모습으로 귀착될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름날의 뜨거운 열정이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날의 싸늘한 실망으로 남듯이 희망은 좌절당했다.
남미 아르헨티나의 새 대통령으로 극우 포퓰리스트인 하비에르 밀레이가 당선됐다. 윤석열 대통령도 존경한다는 신자유주의 경제학계의 태두 밀턴 프리드먼을 신봉하는 그는 아끼는 반려견에게 그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중남미는 오래전부터 포퓰리즘과 밀턴 프리드먼의 실험실이었다. 밀레이 당선인은 안성맞춤의 실험재료가 될 것 같다. 좌파와 우파 포퓰리즘의 집권이 반복되면서 나라가 망가져가는 생생한 모습을 20세기 초 한때 경제 강국이었던 아르헨티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한국에서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반목과 대립, 혐오와 조롱으로 채워져 있는 우리 정치의 공론장을 건실한 민주주의 담론의 장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서둘지 않으면 극단의 포퓰리즘이 우리를 집어삼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