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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가 사라진다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전보가 사라진다

그게 그것 같지만 고사성어와 사자성어는 문자적으로 조금 차이가 있다. 옛이야기 깃든 곳에서 말을 길어 올린 게 전자라면, 그야말로 괄목할 만한 뜻을 네 글자에 가둔 게 사자성어(四字成語)다. 한문에 이런 산뜻한 말의 구조가 있다면 영어에는 전혀 뜻밖의 네 글자가 있다. 포 레터 워드. four-letter word. 이는 기억할 만한 가르침이 아니라 욕설이나 육두문자를 뜻한다. 영어에서 상스러운 말들이 주로 네 단어로 이루어진 데서 이런 부작용(副作用)을 얻은 것이다.

넷은 우리나라에도 적용되니 4.4조는 우리말의 기본 율격이다. 가령, 술자리에서 네 글자만으로 말하자는 규칙을 정해도 노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더러 이런 추임새로 분위기도 띄울 수 있다. 맥주네병, 그랬구나, 집에가자. 그뿐인가. 길거리를 질주하는 사이렌 소리는 앵, 앵앵, 앵앵앵이 아니라 앵앵앵앵으로 끊어 듣는 게 일반적 말귀 아닌가.

영어와 다르게 한문이 저런 형식으로 네 글자의 숭고미를 만들 듯,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네 글자도 있다. 그것은 주로 전보에 통용된다. 오늘날처럼 편리한 통신수단이 없었던 시절 그 어떤 긴급한 사정을 전보가 실어 날랐다. 한 글자당 금액이 부과되기에 경황 중에도 짧은 글자에 요점을 몰아넣어야 했던 것. 그런 신호를 받아 적은 사환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수신자에게 부리나케 달려갔던 것.

어린 시절 내 고향의 깊은 마을로도 전보는 가끔 날아들었다. 기쁜 소식보다는 궂긴 게 많았다. 네모난 전보지의 네 글자를 받아들고 울며불며, 시외버스 타러 거창읍으로 황망히 달려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모친위독. 이보다 더 애간장이 타는 사자성어가 어디 있으랴.

전보가 중단된다는 뉴스를 그제 보았다. 도무지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한다. 전보가 없어진다고 세상의 절박함이 해소되고 위독이 사라지는 건 아닐 것이다. 외려 지금의 우리 시대는 비상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태를 통과하는 중이 아닌가.

푸르른 하늘이라고 늘 인자한 얼굴은 아니다. 천둥과 벼락은 그 머나먼 나라에서 치는 전보. 언젠가 누구나 한번은 받아야 할 그 소식에 감전된 듯, 컴컴 공중을 바라보면서 그날 그 언저리를 물컹 만져보는 이가 비단 나만은 아닐 듯한 오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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