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빵지순례’ 명소와 ‘제주밭한끼’가 손잡고 만든 제주 밭작물 빵 탄생
“약간의 진득함이 있으면서도 ‘퐁신퐁신’한 느낌이에요. 메밀로 만든 빵이 이런 맛을 낼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았어요.”
제주 한달살이 중인 요리사 박수현씨(25)는 메밀 빵을 맛보고 한입에 반했다. 제주에서 브런치카페를 운영하고 싶다는 박씨는 제주 밭작물을 활용하는 베이커리와 협업하면 좋겠다는 꿈도 함께 그렸다.
지난 19일 제주시 하나은행 제주금융센터 돌담하늘공원에서 제주 내 유명 베이커리 5곳에서 개발한 제주 밭작물 빵을 맛볼 수 있는 ‘신기루빵집’이 열렸다. 사전 신청을 한 150여명의 ‘빵순이 빵돌이’들은 베이커들이 지난 6개월간 야심차게 개발한 신제품을 정식 출시 하루 전 맛보는 영광을 누렸다.
“(제주)도민이 된 지 얼마 안 됐다”는 한 직장인은 “제주의 메밀 재배 면적이 전국에서 가장 큰데 사람들이 잘 몰라서 아쉬웠다”며 “제주 메밀을 이용한 빙떡이 있지만 관광객들이 사갈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는데, 오늘 맛본 메밀 빵들은 사갈 수 있는 지역특산물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다섯 살 딸은 쫄깃한 큐브식빵에 메밀특제토핑을 올린 ABC에이팩토리베이커리의 제주메밀 네모식빵을 최고로 꼽았다. “부드럽고 밸런스가 잘 맞는다”는 게 가족의 총평이다.
‘신기루빵집’은 2023 제주밭한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된 팝업스토어다. 이재근 제주시농촌신활력플러스 사업추진단장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제주 밭작물의 활용 가치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눠 제주시 농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캠페인 원년인 지난해에는 한국의 겨울 식탁을 책임지는 제주 5대 밭작물(양배추, 브로콜리, 당근, 월동무, 메밀)의 가치와 우수성을 알리는 데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더 많은 이들의 일상에 스며든다는 전략 아래 이제 간식을 넘어 식사의 영역을 차지한 빵으로 영역을 넓혔다. 네이버와 제주여행 애플리케이션 제주지니에서 추출한 리스트를 토대로 제주 밭작물에 관심이 많은 5개 빵집을 선정해 협업에 들어갔다. 이른바 제주 ‘빵지순례’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인기 빵집이다.
가는곶세화 : 제주 푸른콩 사워도, 청보리 치즈타르트
건강한 식사빵을 만드는 곳으로 잘 알려진 제주 구좌읍의 ‘가는곶세화’는 제주 토종콩인 독새기와 토종 흑보리를 이용한 제주 푸른콩 사워도와 청보리 치즈타르트를 내놓았다. 구수한 콩의 향과 맛이 돋보이는 푸른콩 사워도는 콩가루뿐만 아니라 원물을 넣어 충분한 단백질 섭취를 돕는다. 박은미 대표는 “토종 종자를 생산하는 농가를 많이 찾아서 이런 제품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끔 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
호텔샌드 : 보리 비스켓슈, 메밀 크루아상, 선인장 몽테
시식 참가자들이 “인스타(그램) 핫플”이라 추천한 제주 한림읍의 호텔샌드는 보리미숫가루를 일컫는 보리개역으로 만든 보리 비스켓슈, 풍미 좋은 메밀 크루아상, 그리고 초콜릿 디저트인 선인장 몽테로 시선을 끌었다. 피라미드 모양의 부드러운 발로나 카라이브 다크초콜릿을 가르면 선명한 진분홍색 잼이 흘러나온다. 제주 자생식물 선인장 열매로 만든 백년초잼이다. 김성자 대표는 “어릴 적 약용으로 많이 먹었던 백년초 재배지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점이 안타깝던 차에 지역 청장년층과 상의해 개발한 메뉴”라고 전했다.
빵귿 : 가토낭테, 고사리버터·비트후무스를 곁들인 메밀 브로트, 메밀·무화과 샤브레
소금빵으로 유명한 제주시의 ‘빵귿’은 보리, 비트, 레몬으로 색과 맛을 더한 촉촉한 가토낭테, 고사리버터·비트후무스를 곁들인 메밀 브로트, 메밀·무화과 샤브레를 선보였다. 양소형 대표는 “독일에서 맛본 브로트는 호밀 함량이 높아 딱딱한데 메밀을 넣으니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이 나오더라”며 메밀예찬론자가 됐다. 특히 “메밀을 물에 불려 사용하면 어떠한 견과류보다 씹히는 식감이 매력적이었다”며 “분말로만 썼던 식재료의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지난 6년간 빵집을 운영하면서 한계에 다다를 때마다 새로운 식재료를 찾았다”는 양 대표 초당옥수수, 당근, 감자에 이어 메밀, 보릿가루, 비트로 또 한 번 한계를 넘어섰다.
ABC에이팩토리베이커리 : 제주메밀 네모식빵, 제주메밀 고사리후가스, 제주메밀 감자 포카치아, 제주보리 초코쿠키, 캐러멜(생강·우도땅콩)
겉은 바삭하고 안은 쫄깃한 아몬드 크루아상으로 잘 알려진 제주시의 ABC에이팩토리베이커리는 베이커리팀에서 제주메밀 네모식빵, 제주메밀 고사리후가스, 제주메밀 감자 포카치아를, 파티셰리팀에서 제주보리 초코쿠키, 캐러멜(생강·우도땅콩)을 개발해 식사빵과 디저트의 균형을 맞췄다. 베이커리 담당 김유정씨는 “제주메밀 보릿가루를 활용한 초코쿠키는 브라우니 계열의 촉촉함을 유지하면서 카카오닙스와 소금을 얹어 식감을 살렸다”며 “외국인과 육지 손님도 많이 찾는 매장인데 그들에게 제주 밭작물을 알리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아사라베이커리 : 제주보리크림롤, 제주 초당메밀빵, 보리불고기, 브로콜리 포카치아
개업 1년 만에 제과기능장의 정직하고 건강한 빵집으로 입소문 난 제주 삼양의 아사라베이커리는 제주보리크림롤, 제주 초당메밀빵 외에 속이 꽉 찬 빵으로 입맛을 돋웠다. 한 여성 참가자는 불고기와 채소가 듬뿍 들어간 ‘보리불고기’를 ‘원픽’으로 꼽았다. 김봉선 대표는 “일단 먹어서 맛있어야 ‘보리, 브로콜리로 빵을 만드니 맛있구나’ 할 거 같았다”며 맛에 주력했다는 후기를 남겼다.
박수현씨가 꼽은 최고의 빵도 아사라베이커리의 브로콜리 포카치아였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포카치아와 익혀도 아삭함이 살아 있는 브로콜리, 페퍼로니와 흰색 특제 치즈 소스의 조화가 좋아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이다. “감자빵 맛이 궁금해서 춘천까지 간 적이 있다”는 박씨는 “빵지도, 빵투어가 만들어지는 등 빵을 먹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지역에 도움이 되는 소비를 하려는 젊은층이 늘고 있다며 ‘제주 밭작물 빵’의 미래를 밝게 점쳤다.
이날 ‘신기루빵집’에서는 토크콘서트도 마련돼 빵을 직접 만든 베이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가파도 청보리가 너무 예뻐서 언제고 요리에 접목시켜 보고 싶었다”는 박은미 대표의 추억은 ‘청보리 치즈타르트’의 맛에 스토리를 얹었다. 베이커들은 지난 6개월의 개발 기간이 힘들면서도 뿌듯했다고 입을 모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빵을 굽는 일상을 보내다 보니, 정작 다른 빵집과 교류할 일이 없었다던 이들은 이번 ‘빵빵한 제주밭한끼’ 프로젝트를 통해 든든한 유대를 쌓았다. 김유정씨는 가는곶세화의 제주 푸른콩 사워도를, 김봉선 대표는 ABC에이팩토리베이커리의 메밀포카치아를, 양소형 대표는 아사라베이커리의 건강하고 토핑 많이 들어간 빵을, 박은미 대표는 빵귿의 메밀브로트와 고사리버터를, 디저트 전문인 김성자 대표는 다른 네 곳의 식사빵을 ‘내돈내산’ 하고 싶은 빵으로 꼽았다. 이날 선보인 20종의 빵과 디저트류는 해당 빵집에서 지난 20일부터 판매하고 있다.
제주밭한끼에서는 ‘제주밭작물 빵’의 서울 팝업스토어를 열 계획도 갖고 있다. 다섯 군데 제주 빵집의 제주밭작물 연합이 앞으로 한국 빵지도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