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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들녘에 홀로 서서

입력 2023.11.26 20:31

코로나19로 4년 남짓 학교와 도서관에서 특별한 행사와 교육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산골에 문학 탐방이나 자연 체험 하러 찾아오는 학생이나 교사도 없었다. 사람 사는 마을에 사람이 찾아오지 않아 온 마을이 쓸쓸했다. 마치 4년을 도둑맞은 기분이 들었다. 더구나 학교에서도 외부 강사를 초대하지 않아, 강연으로 살림을 꾸리는 강사(예술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했다.

지금도 크게 나아진 것은 없다. 나 같은 산골 농부야 달세 주지 않아도 되는 작은 흙집이 있고, 비탈진 산밭이라도 일구어 먹고살 수는 있어 큰 걱정은 없지만 말이다.

농촌은 농사만 짓는 곳(농장)이 아니다. 그곳에도 사람이 산다. 청년 농부들은 ‘농장’도 소중하지만, 사람 냄새 나는 ‘마을’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과 공동체 모임을 만들어 달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인문학교도 열고, 기타반과 글쓰기반도 연다. 농사도 몇 가지 품목을 나누어 공동작업 공동판매 공동분배를 하기도 한다. 땀 흘려 일하고 나서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놀다 보면 정이 붙는다. 서로 정이 붙어야 사람 사는 맛이 난다.

그리고 가끔 가까이 있는 중고등학생들이 학교에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다 교사들한테 들켜 벌칙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때론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패싸움을 해서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학교에서 총회를 열어 학생들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따른다. 규칙을 어긴 정도에 따라 학생들은 1주일 또는 2주일 남짓 농사일을 하러 온다. 자연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다 받아들인다. 농부들은 학생들과 함께 밥을 먹고, 밭에 거름을 뿌리고, 삽과 괭이로 밭을 일구어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매고 열매를 거두어들이기도 한다.

들녘에서 땀 흘리며 일하고 돌아온 학생들을 보면 참으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학생들은 누가 아무 말 하지 않았는데도 산채비빔밥 그릇에 붙은 밥 한 알, 참깨 한 알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다 비운다. 밤늦도록 잠을 자지 않던 학생들도 일하고 돌아온 날은 방바닥에 등만 닿으면 잔다.

아이고 어른이고 재산이 많든 적든 사람은 일을 해야만 몸과 마음에 단단한 근육이 생기고 사람 냄새가 난다는 것을, 농부로 살아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가슴으로 깨달았다.

얼마 전, 오랜만에 김해여고 학생들과 교사들이 ‘인문학기행’으로 산골 마을에 찾아왔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산골 마을에서 자연체험을 하고, 청년 농부들의 삶과 꿈을 들으며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헤어질 무렵, 교사와 학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선생님은 왜 농부를 보고 자꾸 선생님이라 하세요?” “농부는 말이야. 우리 같은 철없는 학교 선생을 가르치는 진짜 선생님이야.” “왜 농부가 진짜 선생님이지요?” “농부는 가장 위대한 스승의 스승인 자연에서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잖아. 더구나 땀 흘리며 땅을 일구어 우리가 먹고살 수 있도록 애쓰시잖아. 그러니까 농부야말로 우리 모두를 온몸으로 가르치고 살리는 진짜 선생님이지.” 교사와 학생의 대화를 들으며 산골 농부로 살아온 지난 19년이 더없이 기쁘고 행복했다. 겨울방학을 준비하는 빈 들녘에 홀로 서서, 농부를 선생님이라 불러주는 ‘선생님’을 생각하며 꿈을 꾼다, 사람 사는 ‘마을’을.

서정홍 산골 농부

서정홍 산골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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