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권리 없는 이주노동자 양산 정책”
정부가 내년에 고용허가제 비전문 취업비자(E-9)로 국내에 입국하는 이주노동자 규모를 16만5000명으로 결정했다. 올해보다 4만5000명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다. 이들이 일할 수 있는 업종도 음식점업, 임업, 광업 등까지 확대한다. 노동계는 인력난의 근본 원인인 저임금·장시간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않고 이주노동자 공급만 늘리는 땜질식 처방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40차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열고 2024년 외국인력 도입·운용 계획안, 고용허가제 신규 업종 허용 추진 방안 등을 의결했다. 정부는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 등 구조적 요인이 여전한 상황에서 빈 일자리 비중이 높은 일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외국인력 요구가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내년 E-9 이주노동자 도입 규모를 16만5000명으로 정했다. 올해 12만명보다 37.5% 증가했다. 업종별로 보면 제조업 9만5000명, 조선업 5000명, 농축산업 1만6000명, 어업 1만명, 건설업 6000명, 서비스업 1만3000명, 탄력배정 2만명 등이다. 탄력배정은 애초 계획보다 더 많은 외국인력을 필요로 하는 업종에 추가 배정을 하기 위한 인력이다.
2004년 도입된 고용허가제는 내국인을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이주노동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로, 체류자격은 E-9 비자와 재외동포가 받을 수 있는 방문취업 비자(H-2)로 구분된다. E-9으로 국내에 들어온 이주노동자 규모는 2021년 5만2000명에서 지난해 6만9000명, 올해 12만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정부는 음식점업, 임업, 광업 등 3개 업종도 E-9 이주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호텔·콘도업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을 더 거치기로 했다.
음식점업은 전국 100개 지역의 한식점업 주방보조 업무에 시범 도입한다. 허용 업체 기준은 5인 미만 사업장은 사업경력 7년 이상, 5인 이상 사업장은 사업경력 5년 이상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은 1명, 5인 이상 사업장은 최대 2명까지 고용할 수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 H-2 비자의 취업 허용범위를 음식점업 전체로 확대했다. 5월에는 재외동포 비자(F-4) 소지자가 주방보조원, 패스트푸드 준비원, 음식서비스 종사원, 음료서비스 종사원으로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임업은 전국 산림사업법인 및 산림용 종묘생산법인 등에, 광업은 연간 생산량 15만t 이상의 금속·비금속 광산업체에 E-9 이주노동자 고용을 허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음식점업은 고객 등 국민, 해당 업종에 근무 중인 노동자 등 이해관계자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면서 시범사업 평가를 통해 추가 확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외국인력 도입 규모 확대는 내국인이 기피하는 빈 일자리 해소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외국인력 신속 도입과 안정적인 정착 등 체류 관리에도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구인난이 심각한 업종을 중심으로 외국인력 추가 허용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며 “필요하면 다음 달에도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개최하겠다”고 덧붙였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에서 “인력난 업종의 임금·노동조건 개선은 모르쇠하고 무조건 이주노동자를 쓰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정부는 최근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뿐 아니라 지역 이동까지 제한했다. ‘권리 없는 이주노동자 양산 정책’이 지속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도 “이주노동자 도입이 확대된 만큼 처우개선·권리보장이 함께 이뤄져야 하지만 정부의 외국인력 체류지원 강화방안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며 “특히 내년엔 5인 미만 음식점에 이주노동자가 취업할 텐데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 핵심 조항들이 적용되지 않아 우려스럽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