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선관위 서버 조사 결과 북한·중국 해킹 및 선거결과 조작 가능!”
얼마 전 모 정당이 광화문 한복판 세종대로 사거리에 내건 현수막이다. 서울시내 40곳에 이런 현수막을 붙였다 한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국가정보원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시스템을 점검하긴 했지만 위험성을 지적한 것일 뿐, 실제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럼에도 보수단체의 광화문 집회에선 “노태악(선관위원장)을 구속하라” “조작선거 책임자 처벌” 구호가 난무한다. 근거 없는 선거부정 주장은 사회통합을 해치고 민주주의 근간을 흔든다.
틈만 나면 ‘가짜뉴스’가 위험하다고 말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왜 이런 주장에 잠잠할까. 대통령의 가짜뉴스 셈법대로라면 당장 압수수색과 구속, 소환조사에 들어가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불리한 이야기를 ‘가짜뉴스’라며 오히려 역으로 공격하는 게 윤석열 정부의 전형적 패턴”(장혜영 정의당 의원)이기 때문이다. 입맛에 맞으면 조금 틀려도 진짜뉴스로 추켜세우고, 안 맞으면 작은 실수를 침소봉대해 가짜뉴스라 매도한다. 이런 정권 입장에서 부정선거라는 메시지나, 보수단체라는 메신저 모두 불리하거나 나쁠 게 없다. 이 때문에 이것은 그들에게 가짜뉴스가 아니다.
‘가짜뉴스’란 실체가 없는, 정의가 불가능한 개념이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가, 고의성이나 악의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등 입장에 따라 잣대를 달리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나 넓기 때문이다. 사실 메시지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가짜뉴스’라는 말은 메시지보다 메신저를 공격하는 데 주로 쓰인다. 누군가에게는 특정 언론사의 보도는 무조건 가짜뉴스이고, 즐겨 보는 유튜버가 말하면 100% 진짜뉴스다. 가짜뉴스라는 말은 사실과 허위를 가려보자는 진지한 목적보다는, 흔히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된다.
‘대선개입 여론조작’을 수사하겠다고 나선 검찰과 ‘사형’까지 운운하는 정부·여당만 봐도 그렇다. 이들은 경향신문과 뉴스타파 등이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흠집을 내기 위해 고의로 조작한 정보를 유포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공작에 익숙한 정치인과 과거 없는 죄인도 만들어냈던 검찰의 일부 검사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언론은 사실을 최대한 모아 공익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가감 없이 보도할 뿐이다. 제대로 된 언론사라면 허위·조작 정보를 보도하지는 않는다.
‘가짜뉴스’를 잡겠다고 나선 것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았다. 지난 정부 당시 박대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구상에서 가짜뉴스를 때려잡겠다고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국가기관을 동원하는 곳은 대한민국뿐”이라고 반대했다. 공수가 뒤바뀐, 마주 선 거울 같다. 민주당은 ‘가짜뉴스 피해 구제법’이라며 언론중재법 졸속 개정을 시도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결국 자기들이 원하는 말을 해줘야 한다. (중략) 본질적으로는 보는 사람이나 만드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이나 뉴스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다.”(김민하 정치평론가) 그렇다. 뉴스, 혹은 사실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오직 나 혹은 내 편만 쳐다본다. 언론이 왜 필요하겠는가. 확성기만 있으면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