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소장의 ‘갑질’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지난 3월 숨진 경비원이 일하던 아파트가 이번에는 ‘경비원 절반 감축’에 나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경비원들과 일부 주민들은 “갑질에 목소리 내온 경비원들에 대한 탄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 아파트 경비원들은 사건 이후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민주일반노조)에 가입해 관리소장 퇴출 및 진상 규명 등을 요구해온 터다.
경비원들과 민주일반노조는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A 아파트 관리사무소 앞에서 ‘50% 경비노동자 감원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감원 시도는 불법적이며 경비원들의 합법적인 투쟁을 무력화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민주일반노조에 따르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는 현재 76명인 경비원 인력을 내년 2024년 1월부터 33명으로 감원할 방침이다. 입대의 측은 지난 9월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경비 인력 감축을 추진하고 있는데, 노조 측은 “실효가 없는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한 불법적 인원 감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공동주택관리법과 아파트 관리규약에 따르면 경비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는 ‘주민 투표’가 필요하다. 9월 설문조사 당시 설문지에도 ‘관리규약에 의한 주민 동의(조사)는 아니다’라는 문구가 명시돼 있었다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박현수 민주일반노조 조직부장은 “아파트 측은 10월 초부터 이 설문을 바탕으로 33명으로 감원하는 안으로 경비용역사 입찰을 진행했지만 세 차례의 파행을 겪었다”며 “최근 서울 강남구청 주택과에서 선정 지침 및 공동주택법관리법 위반으로 수정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와 만난 관리사무소 직원은 노조 측 주장에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경비원 홍모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8개월간 투쟁을 계속해왔는데, 43명이 연말에 부당해고를 당하게 생겼다”며 “분리수거, 외곽청소, 주차관리, 택배관리 등을 절반의 인원으로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가리란 걸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이날 기자와 만난 70대 경비원 B씨도 “우리가 매일 가만히 앉아 있는 것 같지만 매일 출입구를 쓸고, 주민들을 도우며 보이지 않는 데서 다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감축 소식에 불안하다. 다들 나이도 많고 여기서 나가면 무슨 일을 하겠나”라고 했다.
주민들은 경비원 감축안에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파트 주민 C씨(66)는 “사람이 죽었으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며 “앞서 입대의 대표가 주민들 동의로 해임되기도 했다. 대표성 없는 사람들이 왜 결정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주민 김부안씨(95)는 “경비원이 있으면 동네도 깨끗해지고 동마다 여러 명 있으면 든든한데, 지금보다 줄이면 불편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반면 “관리비가 너무 많이 나와 (경비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면 좋긴 하다”는 주민도 있었다.
이 아파트 경비원 박모씨(74)는 지난 3월14일 ‘관리소장의 갑질 때문에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졌다. 경찰은 유서에서 ‘갑질 가해자’로 지목된 관리소장에 대해 ‘범죄 관련성이 없다’고 보고 지난 7월 입건 전 조사(내사) 종결 처분했다. 경찰은 ‘직장 내 괴롭힘’은 조사 권한이 고용노동부에 전속돼 있다는 이유로 별도의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노동부는 관리소장의 부당한 업무 지시가 있었는지 등을 아직까지 조사 중이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경비원들은 노동 환경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해고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아파트에는 ‘24년 1월1일부터 경비 운용 및 주차·보안 시스템 개선 추진!’이라고 적힌 현수막과 ‘일방적인 설문조사로 주민들을 철저히 속이고 기만하는 관리소장과 입대의는 각성하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경쟁하듯 내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