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연구·개발(R&D) 예산 중 국제협력 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내년 정부 전체 R&D 예산을 16.6% 줄인 대신 글로벌 R&D 예산은 올해의 3배가 넘는 1조8000억원으로 덩치를 키워 놨지만, 구체적인 사업 계획은 미정인 까닭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글로벌 R&D’를 강조하자 일단 예산부터 늘리고 해외 파트너는 나중에 찾겠다는 식이니 예산 삭감 직격탄을 맞은 국내 연구자들에겐 기가 찰 일이다. 충분한 준비 없이 ‘개문발차’로 추진되는 국제협력 사업들이 과연 성과를 거두게 될지 걱정이 앞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27일 발표한 ‘글로벌 R&D 추진 전략’을 보면 현재 전체 예산의 1.9% 수준인 글로벌 R&D 예산을 6~7% 수준으로 늘리고 향후 3년간 5조4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한다. 한·미·일 3개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R&D 네크워크를 강화하고, 바이오·양자·자율주행·수소 등 11개 분야별로 선진국과 협력하는 ‘플래그십(주력) 프로젝트’를 발굴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선진국과의 협력이라고 해도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추진된다면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해외기관의 국가연구·개발 사업에 참여하는데 법적 근거가 충분치 않고, 연구성과를 누가 가져갈 것인지 국제협력 관련 규정도 분명치 않다. 이러다간 자칫 국내 기관이 불리한 협약을 맺으며 상대국에 돈만 퍼주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체 파이’가 줄어든 상태에서 글로벌 R&D 예산 비중을 급격히 늘림으로써 국내 연구자들에게 돌아갈 예산은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게 분명하다. 정부가 정한 중점 분야 외에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는 기초과학 분야는 실험장비 가동중단, 구조조정 등으로 연구 명맥이 끊길 판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내년 연구·개발 예산안 편성내역을 분석한 결과 2024년 조기 종료키로 한 13개 사업 중에는 시작한 지 1~2년 이내인 사업도 포함됐다고 한다. 이 사업들의 투자비용은 고스란히 매몰비용이 될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실패의 축적’을 통해 비약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연구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겠는가.
한국은 과학기술에서 남이 이룩한 걸 빠르게 따라가는 추격자에서 벗어나 창조·개척자로 전환해야 한다. 정부가 이런 미래상에 동의한다면 과오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야당과 협력해 R&D 예산을 최소한 올해 수준으로 복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