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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났다? 오히려 좋아…수선이 ‘핫하다’

수선에는 정답도 없고 틀린 것도 없다. 그저 나만의 개성만이 남을 뿐이다. 구멍도, 고친 부분도 모두 나만의 서사가 된다.  한군 제공

수선에는 정답도 없고 틀린 것도 없다. 그저 나만의 개성만이 남을 뿐이다. 구멍도, 고친 부분도 모두 나만의 서사가 된다. 한군 제공

연중 최고의 할인율로 쇼핑 욕구를 자극하는 블랙프라이데이 시즌이 막 마감됐다. 국내 최대 패션 플랫폼 무신사가 ‘블프’ 세일을 시작한 지 6일 만(11월28일 기준)에 1500억원어치의 옷이 팔렸다. 클릭 한 번이면 ‘신상’이 집으로 온다. 유행이 지나거나 작은 구멍 하나만 생겨도 의류수거함에 투척되는 옷이 부지기수다. 수선은 번거롭고 버리는 것은 거리낌이 없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가 자사 재킷 사진을 걸고 낸 캠페인 광고 포스터. 소비는 곧 자원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가 자사 재킷 사진을 걸고 낸 캠페인 광고 포스터. 소비는 곧 자원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수리할 권리를 달라

“Don’t buy this Jacket(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2011년 대대적인 블랙프라이데이 세일로 소비 심리가 급증했을 시기 미국 뉴욕타임스 전면에 한 의류업체의 광고가 실렸다.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가 자사 재킷 사진을 걸고 낸 광고의 문구다. 파타고니아는 친환경 공정 제조를 지향하나 재킷 한 벌을 만드는 데 많은 자원이 소모되니 ‘사기 전에 깊이 생각하라’는 소비자를 향한 캠페인을 벌였다.

수리보다는 리퍼비시 제품(반품이나 미세한 흠이 있는 제품을 수리한 상품) 구매를 유도하며 소비자에게 수리할 권리를 박탈하는 정책을 펼쳐온 스마트폰, 헤어드라이어 글로벌 기업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과잉 제품 제조가 환경문제로 불거지자 유럽연합과 미국이 최근 소비자의 ‘수리할 권리’를 보호하는 법률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제조업체는 전자기기 수리 절차나 기준 등의 자료를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하며 수리 부품을 10년 동안 보유해야 한다.

정주연 다시입다연구소 소장은 “전자 제품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걸쳐 수리, 수선하는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제품을 오래 사용하는 것이 멋스러운 것이 되며 정책 또한 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수선을 맡기면 비용의 절반을 국가에서 지원할 정도로 수선 장려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1월17일 다시입다연구소와 아름다운가게가 ‘기초 손바느질 워크숍’을 열었다.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잠깐 해본 것을 제외하고 손바느질이 처음인 10명이 모였다. “다림질을 잘못해 얼룩이 남은 애착 티셔츠를 내 손으로 수선하고 싶다” “옷을 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늘 단추가 떨어져 직접 달아보고 싶다” “잃어버린 고칠 권리를 되찾고 싶어 왔다” 등 다양한 이유로 수선 첫걸음마를 떼려는 이들이다.

지난 11월17일 다시입다연구소와 아름다운가게가 ‘기초 손바느질 워크숍’을 열었다.

지난 11월17일 다시입다연구소와 아름다운가게가 ‘기초 손바느질 워크숍’을 열었다.

공방 ‘나무옆나무’ 김민정 강사가 2시간 동안 ‘간단하지만 수선하기에 충분한’ 바느질에 대해 강의했다. 김 강사는 “타고난 ‘금손’과 ‘똥손’은 없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바느질을 즐기는 것”이 수선을 위한 마음가짐이라며 수업을 시작했다.

“수선이 필요한 해지고 미어진 곳은 오히려 내 옷에서 가장 귀한 부분이 될 수 있어요.”

장인이 한 땀 한 땀 지은 것만 명품일까. 한 땀 한 땀 나의 손길과 이야기가 들어간 수선된 옷도 세상에 하나뿐인 명품이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가장 간단한 바느질인 홈질과 가장 튼튼한 박음질을 연습했다. 김 강사는 꽃 모양으로 단추 다는 법, 간단하게 매듭짓는 법 등 실생활에서 유용한 ‘꿀팁’을 전수했다.

애착 티셔츠의 얼룩을 꽃 모양 단추실 달기로 덧수선한 신하영씨는 “낡고 헐거워진 티셔츠지만 너무 편해서 엄마의 잔소리에도 버리지 않았던 옷”이라며 “오늘 수선하니 더 애착이 생겼다”고 뿌듯함을 전했다.

지난 11월 17일 다시입다연구소와 아름다운가게가 연 ‘기초 손바느질 워크숍’이 진행됐다. 때이른 한파도 물리친 열띤 수선의 현장이었다. 이유진 기자

지난 11월 17일 다시입다연구소와 아름다운가게가 연 ‘기초 손바느질 워크숍’이 진행됐다. 때이른 한파도 물리친 열띤 수선의 현장이었다. 이유진 기자

기업 ESG 부서에서 사내 뉴스레터와 기획을 담당하고 있는 김영주씨는 “제조 기업이라 친환경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평소 옷 입는 것을 좋아하는데 기본적인 자르고 꿰매는 것에 용기가 나지 않았다. 큰 용기를 배우고 간다. 더는 입지 않은 옷을 리폼할 수 있을 때까지 바느질을 배워볼 생각”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정 소장에 따르면 올해 블랙프라이데이 세일 기간에 팔린 제품의 배송에만 42만9000t의 온실가스 배출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영국 매체의 보도가 있었다. 이는 런던에서 뉴욕까지 왕복 항공편을 435회 운항하는 것과 맞먹는 수치다. 그는 “우리가 구매의 10%를 줄이면 탄소 배출은 11% 감소한다. 우리는 이미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 기업의 이윤 극대화 장치에 이용당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새 제품을 사기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제품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다. 정 소장은 쇼핑을 멈출 수 없다면 ‘양보다는 품질’ ‘유행보다는 취향’을 고려해 쇼핑 속도를 늦추자고 당부했다. 다시입다연구소는 향후 10개월간 매월 세 번째 금요일 오후 7시 수선 워크숍을 진행할 계획이다.

■구멍, 오히려 좋다…수선 예술가들의 팁

헤지고 미어졌던 부위가 셀프 수선을 거치면 내 옷을 보다 특별하게 만들 수 있다. 한 땀 한 땀 나의 손길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김민정 제공

헤지고 미어졌던 부위가 셀프 수선을 거치면 내 옷을 보다 특별하게 만들 수 있다. 한 땀 한 땀 나의 손길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김민정 제공

① 손바느질 전문가 김민정

손바느질과 수동 재봉틀 공방을 운영해온 김민정 강사는 순환경제와 친환경 이슈로 인해 셀프 수선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바느질한 지 10년이 되었는데 최근 강의를 요청하는 지자체나 단체가 늘었어요. 또 수선 관련 책 제안도 받았어요. 우리나라에는 수선이나 바느질 전문 책이 거의 나오지 않았는데, 수선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있음을 실감해요.”

2시간 남짓 수업으로 셀프 수선을 할 수 있는 기술을 모두 배울 수는 없다. 물건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시간이 됐다면 충분하다.

“사실 우리는 옷을 꿰매 입을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죠. 건강한 삶을 위해 수선을 해야 하지만,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제든 여유가 생기면 강의에서 배운 순간을 떠올려주면 좋을 것 같아요.”

바느질 수선의 기본 도구는 바늘과 실이다. 홈질, 박음질, 공그르기 같은 기본 바느질과 단추 달기는 일반 손바느질용 바늘 6~9호를 쓰면 된다. 실은 바늘구멍 사이즈와 맞는 것을 쓰는 게 중요하다. 굵은 실을 억지로 끼워서 사용할 경우 바느질이 무척 힘겹다. 기본 도구 이외에도 골무, 초크(수예용 수성펜), 실꿰기, 시침핀 등이 추가되면 더 쉽다. 실력이 늘었다면 다양한 바늘과 실을 활용하여 나만의 스타일로 변주해도 좋다.

안미영씨는 뜨개 수선을 ‘순수함을 담아내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안미영 제공

안미영씨는 뜨개 수선을 ‘순수함을 담아내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안미영 제공

② 뜨개 수선 전문가 안미영(제타안)

뜨개 수선은 뜨개질을 이용해 덧댈 천을 만들어 찢어지거나 구멍이 난 곳을 수선하는 방법이다. 손상된 곳을 감추는 바느질이 아니라 뜨개 패치를 덧대 특별한 디자인을 만든다. 안미영씨는 뜨개 수선을 ‘순수함을 담아내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뜨개 수선으로 뜨개질 특유의 따뜻함을 불어넣을 수 있어요. 옷이나 가방에 포인트가 될 수 있는 굉장히 ‘유니크한’ 수선이 되죠. 똑바르지 않아도, 거칠어도 그것만의 매력이 될 수 있어요. 우리의 삶도 내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수선에도 내 의지를 넣을 수 있어요. 만약 어울리지 않으면 실을 풀어내면 그만이죠.”

뜨개 수선을 배우러 온 이들은 공통으로 옷을 수선한 기쁨보다 뜨개질하는 과정에서 힐링하는 게 더 좋다고 말한다.

“무거운 스웨터 털실을 풀어 컵 받침을 만드는 분도 있어요. 소중한 사람이 떠준 옷을 그렇게 추억으로 간직하는 거죠. 힐링 그 자체 아닌가요?”

안씨는 홈스쿨링으로 3남매를 키웠다. 뜨개질은 아이들의 놀잇거리였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뜨개 도구를 갖고 놀다 보니 25세가 된 첫째는 자신의 옷부터 신발까지 척척 수선해낸다. 뜨개 수선이라고 겨울옷만 고치란 법은 없다. 사계절 옷에 활용할 수 있다. 여름용 실로 여름 청바지를 수선하면 시원한 느낌이 한결 살아난다.

뜨개를 이용한 수선은 털실이 들어갈 만한 귀가 큰 돗바늘이나 이불용 바늘을 사용하면 된다. 대바늘을 이용해 손뜨개를 하고 싶다면 중간 크기인 6호나 7호를 사용하면 된다. 기본 뜨기인 ‘겉뜨기’만 해도 수선과 손뜨개를 하기 충분하다.

안씨는 영감을 얻기 위해 ‘핀터레스트’ 사이트나 앱을 이용한다. “뜨개 수선(knitting mending)을 검색하면 톡톡 튀는 다양하고 재밌는 전 세계 사람들의 뜨개 작업을 볼 수 있다. 특히 자투리 털실로 다양한 색상을 섞으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작품이 탄생된다.”

한군이 구사하는 ‘비저블 멘딩(visible mending)’은 ‘패브릭 아트’에 가깝다.

한군이 구사하는 ‘비저블 멘딩(visible mending)’은 ‘패브릭 아트’에 가깝다.

③ 치앙마이식 자수 전문가 복태와 한군

치앙마이식 자수 전문가이자 ‘죽음의 바느질 클럽’을 운영하는 복태와 한군. 인디밴드 ‘선과영’으로도 활동하며 자유로운 삶을 사는 이들 부부는 우연히 태국 치앙마이 여행을 갔다가 고산족의 바느질을 보고 그 매력에 푹 빠졌다.

“2016년 태국 치앙마이 여행을 갔다가 바느질 고수 선생님을 만났어요. 엑(EAK)이라는 바느질과 어울리지 않는 외모의 남자 선생님이었어요. 패턴과 곡선 재단도 정확하지 않고 스티치가 어긋나도 틀린 것이 아닌 자유로운 바느질에 매료되었죠. 당장 바느질을 배웠어요.”

아내 복태는 치앙마이식 옷을 짓고 남편 한군은 치앙마이 자수로 옷 수선에 나섰다. 보통의 수선은 흔적을 최대한 감추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면, 한군이 구사하는 ‘비저블 멘딩(visible mending)’은 ‘패브릭 아트’에 가깝다.

“비저블 멘딩이란 구멍 나고 얼룩진 부분을 최대한 숨기는 게 아니라 컬러풀한 실로 수제 장식처럼 꾸며 문제를 해결하는 수선 방식입니다. 치앙마이식 바느질은 완전히 다른 소재와 실을 이용해 수선하는 자유로운 방식이라 대번에 반했어요. 옷에 구멍이 나면 ‘수선할 기회’가 생겨서 오히려 반가웠죠.”

부부는 내년 1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떠나는 치앙마이 바느질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7월에는 전시를 열 예정이다. 수선이 옷을 고쳐 입는 작업을 떠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어서다.

“예측하지 못한 구멍의 모양은 작업의 기쁨을 배로 늘려주죠. 작업 중 예상치 못한 제 무의식이 나와 의도하지 않은 디자인이 나오기도 하고요. 수선 작업에는 정답도, 틀린 것도 없는 거예요.”

한군은 음악과 바느질은 같다고 말한다. 음악은 소리를 엮고 바느질은 실을 엮는다. 자기다움의 시대다. 나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수선 예술의 세계, 이제 옷장을 열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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