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청
국가기관이 조달청을 거치지 않고 1억원이 넘는 물품·용역을 자체 조달하는 비중이 3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기관은 조달사업법에 따라 1억원 넘는 물품·용역 구매 시 조달청을 통해 계약해야 하는데, 천재지변 등에 따라 예외를 둘 수 있다는 규정을 남용해 정부 스스로 중앙 의무조달 제도를 무력화해온 것이다.
내년부터는 조달청을 거쳐야 하는 발주의무 기준 금액이 훨씬 더 커지는만큼 이같은 관행적 일탈이 더 크게 고착화되지 않도록 감시·감독방안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3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조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가기관 1억원 이상 물품 및 용역에 대한 수요기관 자체조달 비중은 평균 28.7%(건수 기준), 총 13조 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국가기관의 자체조달 금액은 2018년 2조6400억원에서 이듬해 2조3200억원으로 감소했다가 이후 지속적으로 늘어 지난해 3조4000억원까지 증가했다.
현행 조달사업에 관한 법률·시행령은 국가기관이 1억원 이상의 물품 및 용역구매 시 조달청장에게 계약 체결을 요청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천재지변이나 국방 관련 사업, 재해·사고에 대한 긴급복구, 기술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하는 특수공사, 조달청장이 수요기관에 계약체결을 위임하는 경우 등에 한해서는 국가기관의 자체발주가 허용된다.
자료: 조달청, 민주당 홍영표 의원실
하지만 일부 기관들은 의무조달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도 관행적으로 자체조달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월20일부터 올해 9월12일 기간 천재지변과 긴급한 행사 등을 이유로 자체조달을 택한 5억원 이상의 공고는 총 198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113건은 국토교통부 공고였는데 대부분이 기본 실시설계·건설사업관리용역, 위탁관리 등 일반적인 내용이었다.
80억원 규모의 온실가스 국제감축사업 유망분야 발굴 및 협력모델 설계(산업통상자원부), 우체국 소포포장상자 위탁공급업체 선정 공고(부산지방우정청·44억원), 2023년 제설자재 구매 공고(서울지방국토관리청·6억 원), 대전교도소 논산지소 식자재 구매계약 입찰 공고(대전지방교정청·5억원) 등은 의무조달 예외 사유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소포상자와 식자재 구입, 제설용 소금을 겨울이 아닌 한여름에 구매하는 것은 긴급한 구매나 구매 특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달청은 국가기관이 대규모 물품·용역을 자체조달로 판단해 공고를 내더라도 적합성 여부를 별도 검증하지 않는다. 각 기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자체조달이 가능한 구조다.
이런 가운데 기획재정부는 국가기관의 자체발주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수요기관의 구매 자율성을 높이고 신속한 계약 체결을 유도한다는 취지에서다.
기재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공공조달 혁신방안에 따르면 조달청 발주의무 공사금액 기준은 현행 30억 원에서 2024년 50억원, 2026년에 100억원으로 상향된다. 100억원 미만 공사는 조달청을 거치지 않고 국가기관이 자체발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물품·용역의 조달청 발주의무 기준도 2024년 3억원으로 2026년에는 5억원으로 조정하기로 했다.
홍 의원은 “지금처럼 자의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수요기관의 직접 구매를 근절하지 못한다면 제도 개선의 의미가 퇴색될 뿐만 아니라 조달시장의 공정성도 크게 위협 받을 것”이라며 “발주의무 규모를 상향할 예정인 만큼 자체조달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