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유럽 국가들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는 놀라운 사실이 공개됐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올 초 우크라이나의 춘계 대공세 계획에 깊이 관여한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군이 쓸 155㎜ 포탄 제공을 한국에 요구했고, 한국이 들어줬다고 지난 4일 보도했다. 미 국방부는 한국을 설득하면 41일 만에 포탄 33만발을 전장에 전달할 수 있다고 봤으며, 실제로 한국은 “어디까지나 간접 지원”이라는 조건하에 순순히 포탄을 내놨다는 것이다. 포탄이 우크라이나에 직접 전달됐는지, 제3국 등을 통해 간접 제공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군수물자 지원 방침에 변함이 없다”며 이 보도를 확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 계획 전반에 대한 매우 상세한 보도에 미국 관리들이 협조한 정황을 보면, 한국이 어떤 식으로든 포탄 제공에 참여한 사실을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국이 살상무기 보급의 한 축을 담당함으로써 참전하고 있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정부가 살상무기 제공은 없다고 공언했던 것을 생각하면 유감스럽다. 이는 북한도 마찬가지다. 미국 정부는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을 제공했을 걸로 보이는 정황을 공개했다. 결국 남북한이 앞다퉈 이 전쟁에 참여하며 스스로 신냉전 구도에 뛰어든 셈이다.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제공함으로써 서방 진영으로부터 조금 점수를 땄을 수는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1990년 수교 이후 한국과 가졌던 우호관계를 청산하고 북한과 밀착하기로 정책을 전환하면서 한국은 대북정책의 중요한 우군을 잃는 비용을 치렀다. 그 덕에 북한은 탈냉전 후 이어진 30년 고립을 탈피하는 데 시동을 걸었다. 정부의 선택이 과연 국익·실용 외교 차원에서 현명했는지 의문이 든다.
러시아의 침공 후 2년 가까이 이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은 교착 상태다. 미국은 미군을 파병하지 않으면서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기려던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국내에서도 독재로 가고 있다는 비판과 도전에 직면했다.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한국에 더 많은 지원 요청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 늦었지만, 한국은 더 이상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좁은 휴전협상 문을 열고 양국 시민들의 추가 인명 손실을 막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