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 측 “사퇴 요구면 어떻게 만나나”
배경엔 신당 움직임 파급력 약하단 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가 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3지대 신당 창당을 준비하는 이낙연 전 대표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있다. 이 전 대표가 자신의 대표직 사퇴를 요구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당의 분당은 가급적 막아야 하지만 내년 총선 불출마나 당 대표직 사퇴 결단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이 전 대표와 만날 뜻을 밝힌 지 닷새째인 10일 이 전 대표에게 공식 만남을 제안하지 않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6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의 단합과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누구나 열어놓고 소통하고 대화하고 협의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의 화합을 위해 이 전 대표와 만날 수 있다고 밝힌 셈이다. 반면 이 전 대표는 지난 7일 “사진 한 장 찍고 단합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면 의미 없다”고 일축했다.
이 대표는 이 전 대표와 만남이 성사된다면 대표직 사퇴를 요구받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 한 통화에서 “이 대표와 이 전 대표가 만날 수도 있고 안 만날 수도 있다”며 “이 대표의 사퇴 요구를 전제로 만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만나려면 조건 없이 만나야 한다”며 “허심탄회하게 만나서 서로 생각하는 바를 얘기하고 그 속에서 합의 조건이 나오면 합의하고 합의하기 어려우면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이 대표가 이 전 대표에게 분당을 막기 위한 다른 조건을 제시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대표 측 한 관계자는 “이 전 대표에게 공동 선거대책위원장 등 공천에서 모종의 역할을 제안하기도 조심스럽다”며 “공천 짬짬이나 공천 나눠먹기용 만남으로 비친다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 정풍운동을 지향하는 ‘원칙과 상식’ 소속 의원들에 대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이상민 의원 외 당 소속 의원들의 추가 탈당을 막고 싶지만 자신의 대표직 사퇴나 불출마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원칙과 상식의 이원욱 의원은 지난달 14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대표와 측근들이 먼저 (험지 출마나 불출마를) 선택해 준다면 언제든지 당이 가라는 데 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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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 측은 원칙과 상식이 요구한 팬덤정치 결별 요구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원칙과 상식의 도덕성·당내 민주주의·비전 정치 회복 요구가 너무 추상적”이라며 “대표가 당원들의 자발적인 의사 표시를 어떻게 일일이 막나”라고 말했다. 조응천 의원은 지난 8일 MBC 라디오에서 “일주일 전쯤 이 대표가 전화로 ‘왓츠 롱’이라고 했다. 제가 듣기로는 ‘뭐가 문제라서 그렇게 시끄럽게 구냐’ 그런 거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 대표의 이 같은 무대응의 배경에는 ‘이낙연 신당’이 창당되기 어렵고 된다해도 파급력이 약할 것이란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 친이재명계 의원들은 연일 이 전 대표가 주도하는 신당 추진을 깎아내리고 있다. 김민석 의원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부평초같은 제3세력론은 민주당의 길이 아니며, 위장된 경선불복일 뿐”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총선 코앞의 공천보장 요구 구태를 무어라 포장한들, 그 누가 원칙과 상식과 민주주의라 보겠는가”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내 신당 창당 움직임을 공천권 보장 요구 수준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