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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세계인권선언 75주년…인권위 현주소

“인권위원이 일선 사무처 직원들 비난…인권위 파행 치달아”

입력 2023.12.10 21:25

현장 직원들의 시선

[세계인권선언 75주년…인권위 현주소] “인권위원이 일선 사무처 직원들 비난…인권위 파행 치달아”

이충상 위원 조사관 비난에
사무총장이 “하지 말라” 하자
이 “무식…오만방자한 행동”
김용원 위원은 “맹종” 발언

4개월 멈춘 소위 ‘업무 마비’
파리원칙 따를 땐 ‘등급 하향’
국제사회 속 위상 떨어질 것

직원들 사기 저하…조사 위축
결국 인권위 기능 저해 ‘걱정’

지난 10월30일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

이충상 인권위 상임위원(왼쪽 사진)은 박진 인권위 사무총장 등을 향해 “인권위원들의 상관인 것처럼 하는 무식하거나 오만방자한 행동(을 한다)”면서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이며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으니 사무총장과 운영지원과장은 그 자리에서 비켜야 한다”고 했다. 사무처를 향한 수위 높은 언사에 송두환 인권위원장은 “위원장으로서 위원들께 당부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그렇게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는 말은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만 일부 인권위원들의 거친 공세는 그치지 않았다.

서울 중구 인권위 사무실에서 헤드폰을 끼고 전원위 회의 중계방송을 보던 인권위 직원들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들은 “너무 힘들다” “보지 말자” “정신건강에 안 좋다”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걱정 드리운 인권위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22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인권위 건물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고 있다. 권도현 기자

걱정 드리운 인권위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22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인권위 건물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고 있다. 권도현 기자

곳곳에서 파행을 겪고 있는 인권위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최근 인권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 6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인권위 직원들은 최근 상황을 두고 “초유의 사태” “인권 존재가치 부정” 등의 표현을 쓰며 우려를 금치 못했다. 이들은 직원들의 사기가 매우 저하돼 있으며, 이는 조사 위축·기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인권위 기능을 저해할 것이라고 했다.

10년 넘게 인권위에서 일한 조사관 A씨는 “ ‘오만방자’ 얘길 듣고 직원들이 모욕감을 느꼈고, 분노했다”며 “당시 사무총장은 인권위원의 조사관을 향한 비난에 대해 ‘그렇게 하지 말라’고 얘기했을 뿐이다. ‘오만방자’라는 단어를 고른 건 ‘위원과 사무처는 상하관계’라는 인식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김용원 상임위원(오른쪽)이 지난달 30일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사무처가 위원장에 맹종하고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해서도 “불가능한 일”이라며 반발했다. A씨는 “인권위는 다른 정부 부처와 달리 합의제 구조로, 사건을 위원회에 넘길 때 위원장 결재를 받지 않는다”며 “사무처가 위원회로 진정 건을 보낼 때도 안건 상정을 제안하는 것이지 인용을 결정하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인권위에서 17년 근무한 현정덕씨는 “조사 업무에 관해선 조사관이 배타적으로 독립돼 있다. 위에서 업무 지시를 내려서 특정 진정을 조사하는 건 불가능한 시스템”이라고 했다.

이들은 인권위원이 조사관의 조사 방식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을 두고 특히 우려했다. 앞서 이 위원은 인권위 내부망에 문화체육관광부의 이른바 ‘윤석열차’ 진정 건을 조사한 조사관의 조사 방식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김 위원은 침해구제 1위원회에서 정의기억연대의 진정 건을 기각 선언했음에도 후속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담당 국·과장에 대한 인사 조처를 요구하기도 했다.

A씨는 “인권 사안에 대한 견해는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다. 그런데 이슈가 될 만한 사건에 관해 조사관 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의도가 보이는 일 아닌가”라며 “특히 이 위원의 ‘나나 김 위원이 위원장이 되면 징계하겠다’는 얘기를 듣고 직원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조사 부서를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현씨는 “최근 인사 지망을 받았다. 정치 견해와 무관하게 일부 상임위원과 일을 같이하는 부서를 떠나거나, 지원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A씨는 “원래 조사 부서가 가장 안정적이어서 선호 부서였는데, 요즘에는 ‘갈 곳이 없다’고 많이들 얘기한다”고 했다. A씨는 “조사관은 진정 건이 인용되고, 진정인의 삶이 바뀌면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에 긍지를 느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게 부정당하고 있으며, 정치 편향성을 가진 사람으로 매도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인권위 근무 10년 미만인 직원 B씨는 최근 위원 1명만 반대 의사를 밝혀도 안건을 기각 처리하도록 ‘소위원회 운영 방식 변경안’을 통과시키려는 시도에 대해서 “기존에 인권침해라고 판단해왔던 다양한 사건을 기각하게 되면, 사건에 관한 논리 구성이 쉽지 않다”고 했다. 소위가 4개월간 멈춘 것을 두고는 “사건 담당 조사관은 진정인, 피진정인, 피해자 등으로부터 본인 사건에 대한 결론이 언제 나는지 계속해서 문의를 받고 이에 대응해야 하는데, 업무가 폭주했다”고 했다.

B씨는 “일부 인권위원의 인권위 업무 자체에 대한 부정, 독단적인 결정 등으로 이에 대한 후속 조치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훨씬 더 혼란스럽다”며 “반인권적·혐오적인 내용, 국제인권기준을 부정하는 내용 등을 결정문에 넣으려고 한다면, 위원회와 사무처의 협력적인 관계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고 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인권위의 앞날을 더 걱정했다.

B씨는 “인권위 상임위원이라면 열린 마음으로 인권을 공부해야 하는데, 자격도 없고 성찰도 없는 특정 위원들의 판단에 의문을 표하는 직원들이 많아졌다”며 “이직이나 휴직을 고려하는 직원도 늘었다”고 했다. 그는 “인권위는 파리원칙에 따라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의 심사를 받는데,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등급이 하향되는 등 국제사회에서 인권위 위상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며 “이는 결국 현 정권하에서의 인권 상황에 대한 평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A씨는 “이전에는 민감한 안건만 적체됐고 나머지 업무는 정상적으로 돌아갔는데 지금은 기본 업무도 안 돌아가는 상황”이라며 “수백건 진정 사건마다 사람들의 삶이 걸려 있는데 인권위원들은 이를 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씨는 “어떤 견해에 대해서든 적대적이 되는 순간 인권위는 정치적 파벌 장이 된다”며 “다른 사람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으면 들어보고 ‘나는 이런 생각이다. 이런 권한 갖고 있으니 이렇게 결정하겠다’와 같은 의사소통을 하면 좋겠는데 일부 위원은 ‘법률적으로 해석하면 이렇게 되는 건데 양보할 수 없다’는 식의 사고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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