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가 회원들을 상대로 11일부터 총파업 여부를 묻는 투표에 들어갔다. 투표 종료일인 17일에는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총궐기 대회를 연다고 한다. 의협은 의대 증원을 ‘대한민국 의료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실력행사에 나설 태세다. 정부가 지난달 21일 내놓은 ‘전국 40개 의대 증원 수요 조사 결과’에서 각 대학의 증원 규모가 급증한 데 대한 반발 성격이 짙다. 실제 집단행동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대화를 이어가는 와중에 의협이 파업 카드부터 꺼낸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묶여 왔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 수는 2.5명(한의사 포함)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7명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통계 수치까지 댈 것 없이 의사가 부족한 현실은 의사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소아과·외과·응급의학과 등 필수 의료 분야는 붕괴 직전이다. 지난 7일 마감된 내년도 전공의 지원에서 ‘빅5’로 불리는 대형병원에서도 필수 의료 분야는 대부분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지방 병원은 수억원대 고액 연봉을 내걸어도 의사를 영입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한다. 이렇다 보니 응급실을 전전하다 환자가 사망하고, 부모들이 소아과 앞에서 긴 줄을 서는 ‘오픈런’이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국민 눈엔 의협의 행보가 ‘밥그릇 지키기’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의대 정원 확대는 의협의 반대에 번번이 막히곤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추진됐으나 코로나19 대유행 국면에서 의사들이 집단휴진으로 반발하면서 좌초됐다. 하지만 의료공백 문제를 풀려면 더 많은 의사를 양성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의협이 3년 전과 같은 이유로 국민을 볼모 삼아 파업을 결의한다면 역풍을 부를 수밖에 없다.
의대 정원 규모는 의사단체와의 협의만으로 추진할 일이 아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고 국민 일상에 미치는 파장도 크기에 특정 이익집단이 논의를 독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부는 시민 입장에서 의료계와 머리를 맞대며 증원 계획을 짜고, 의료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한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필수·지방 의료 붕괴가 의사 증원만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필수 의료 수가 개선, 지방 의료 살리기 정책도 함께 내놓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