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새벽배송 노동자에도 법 규제 대신 ‘원청 선의’ 앞세워

김지환 기자

인권위 법 규제 권고에도 “상생노력 지원”

노동계, ‘빛 좋은 개살구’식 대책일 뿐 비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2월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상생임금위 발족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노동부 제공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2월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상생임금위 발족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노동부 제공

고용노동부가 새벽배송 등 야간노동 종사자 건강보호를 위해 원·하청 상생노력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노동부에 야간노동을 법으로 규제하라고 권고했지만 노동부는 이번에도 원청 선의에 기대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노동부는 업종별 원·하청 격차 해소, 비정규직 차별 예방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도 상생협약·가이드라인 등 ‘상생 모델’로 풀어가고 있다. 노동계는 하청 노동자가 원청과 교섭을 통해 노동조건·안전보건 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을 거부한 정부가 ‘빛 좋은 개살구’식 대책만 내놓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11일 경기 김포시 소재 컬리 물류센터에서 컬리넥스트마일·쿠팡CLS·SSG닷컴·CJ대한통운·오아시스 등 새벽배송 5대 업체 및 하청업체(선영종합물류)와 간담회를 열고 새벽배송 종사자 건강보호 방안을 논의했다. 5대 업체에서 새벽배송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특수고용직 노동자다.

올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동부 국정감사에선 쿠팡의 물류 자회사 쿠팡CLS 하청업체로부터 일감을 받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쿠팡 퀵플렉서)의 죽음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 노동자는 지난 10월13일 오전 4시44분쯤 경기 군포시 한 빌라에서 배송 중 숨진 채 발견됐다. 야당 의원들은 야간노동이 노동자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서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5대 업체들은 특수고용직 배송기사 건강보호를 위해 적정 노선 위탁 협의를 통한 업무 과중 방지, 특수건강진단 자부담 비용 지원, 폭우·폭설 등 자연재해 예상 시 주문 조기마감 등의 조치를 하고 있다. 이 장관은 “뇌심혈관질환 조기 발견에 특화된 심층건강진단 비용지원 확대 등 (정부) 지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원청이) 상생 차원에서 새벽배송 종사자 건강·안전에 책임있는 역할을 해달라”고 말했다.

원·하청 상생을 강조한 노동부 접근법은 인권위 권고와 배치된다. 인권위는 지난 10월23일 노동부에 “야간노동 종사자 건강권 보호를 위해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에 1주 혹은 1개월 등 일정한 단위기간 동안 허용될 수 있는 야간노동의 한도·요건에 관한 기준·원칙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노동부는 새벽배송 종사자 안전보건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원·하청 상생과 자율을 강조한다. 노동부는 올해 초부터 조선업·석유화학·자동차 업계의 원·하청 상생협약 체결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원청의 기성금(도급비) 지급 부족을 토로했던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대표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상생협약 성과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부는 지난 2월 임금체계 개편·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등을 논의하기 위해 상생임금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상생임금위원회는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복리후생·직업훈련을 지원하는 조치 등은 불법파견 징표로 보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원청이 하청업체를 지원하고 싶어도 불법파견으로 판정될까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것을 해결해 ‘착한 원청’의 상생협력을 유도한다는 취지다. 금속노조는 “대기업의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노동부는 지난 8일 ‘기간제·단시간·파견노동자 차별 예방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도 우수 사업장에 시상하는 등 사용자 자율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노총은 “‘노력한다’ ‘개선한다’는 식으로 규정된 가이드라인은 실효성이 없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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