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일본 내 조선학교 차별 등을 소재로 한 영화 제작자, 연구자, 시민단체의 재일조선인 접촉을 제한하고 나섰다. 통일부는 4~6년 전 이미 제작이 완료된 조선학교·재일조선인 관련 영화들의 감독·제작자, 10년 이상 조선학교를 지원해온 시민단체 ‘몽당연필’ 관계자들에게 재일 조선인들과의 접촉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다. 또 조총련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배봉기 할머니를 도왔던 과정을 연구하려던 연구자의 접촉 신청을 거부했다.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건데, 통일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하지 않던 일이다.
통일부는 12일 “질서 있는 남북 교류협력을 위한 조치”라며 “능동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 언론에 공개되고,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된 사항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차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여당 의원과 보수 언론이 문제 삼은 사안에 국한해 조사 중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과거 정부들은 모두 불법을 방치했으며, 누군가 강하게 문제 삼지만 않는다면 굳이 조사하지는 않겠다는 의미인가.
문제가 된 영화 <차별>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일본 내에서 차별받으면서도 정체성을 지켜오고 있는 재일조선인 사회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에서 공개돼 호평을 받았다. 과거 아베 신조 정권이 일본 정부의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조선학교만 배제하는 차별을 하자 한국 시민사회는 재일동포 4·5세의 한국 말과 역사 교육에 도움이 되고자 지원 활동을 해왔다. 조선학교 학생들 상당수는 한국 국적자이고, 남북한 어느쪽 국적도 택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조총련 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이들이 곧 북한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영화 제작자, 연구자, 시민단체 회원들이 이들에게 “당신은 반국가세력인가”를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분명한 건 통일부의 조치가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어렵게 남과 북, 해외에 있는 동포들 사이를 이으려는 시민들의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재일조선인 사회가 가진 가느다란 북한과의 끈을 이유로 이들과의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는 것은 단견이다. 모든 남북 연락채널이 끊어진 상황에서 나중을 위해 북한과의 가느다란 끈 하나쯤 남겨두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정부조직법의 취지대로라면 통일부는 다리를 끊는 게 아니라 다리를 놓는 부처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