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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과연 정의일까

입력 2023.12.14 20:48

‘이제부터 내가 다시 심판한다.’ 시리즈물 <비질란테>의 포스터에 등장하는 문구다. 낮과 밤이 다른 두 얼굴의 다크히어로가 구멍난 법의 허점을 메우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범죄자를 심판해 정의를 세운다는 내용이다. 억울한 개인을 등장시켜 법과 법 집행 현실의 괴리를 드러내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법 시스템을 고발하는 형식이지만, 정작 공론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사적 복수를 정당화하는 대중문화로 소비되고 있다. 이런 식의 사적 제재가 유행이다. 드라마나 영화뿐만이 아니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사건의 가해자에 대한 신상 털기, 서비스나 맛에 불만족한 소비자의 평점 테러, 댓글 공격 등 우리 사회에 대리 응징이 일상화되었다. 유튜버까지 뛰어들어 법적 보호를 못 받는다고 느끼는 억울한 피해자의 복수심을 자극한다. 일단 가해자로 지목되면 법에 어긋나는 절차와 방식으로라도 피해자가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되갚아 주면서 환호하고 공감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시적 복수 감정이 꿈틀거리고, 문명사회에서 사적 복수의 관습이 되살아난 것이다.

왜 사적 제재가 넘쳐날까. 왜 개인이 직접 심판자로 등판하는 드라마에 열광할까. 공적 제재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수사와 재판을 포함한 사법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이 그 원인이다. 흉악한 범죄가 보도되면 국민은 가해자의 신상이 까발려지고 구속되고 엄한 형벌이 내려지길 바란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신상 공개는 제한되고, 구속영장도 기각되어 자유롭게 나다니고 재판 결과는 대중의 기대와는 딴판이다. 그러니 다크히어로 같은 정의의 사도가 나타나 복수해 주면 통쾌감을 느끼고 열광할 수밖에 없다. 공권력에 대한 불만과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대신 해소해 주기 때문이다. 흉악한 범죄 보도를 접한 국민은 자신을 피해자화하기 때문에 사법이 범죄 피해자를 보듬어 주지 못하고 피해자의 복수심을 다독여 주지 못하면 분노한다. 그래서 가해자를 응징하고 처단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찾게 된다. 다소 불법적인 절차나 방식으로 가해자의 악행에 상응하는 형벌이나 불이익을 부과하는 것이 선이라고 느끼게 된다. 가해자를 응징하는 데 죄형법정주의나 적법절차가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법치국가에서 비문명적이고 원시적인 피의 복수에 열광하는 상황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 픽션이라고 그대로 두면 사적 제재가 정상적인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설사 법에 구멍이 있더라도 개인이 메우게 해선 안 된다. 입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 메워야 하고, 법 적용에 구멍이 나 있으면 경찰과 검사나 판사가 그 구멍을 채워나가야 한다. 그래야 시민이 존중하고 지키는 살아 있는 법이 될 수 있다.

지금은 재판 지연이 사법 불신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신임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통하여 법치주의를 실질적으로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법원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재판 지연도 문제지만 형량의 적절성에 대한 법원과 국민 사이의 틈이 더 문제다. 양형 기준제가 시행되고 실제 처벌 수위가 높아졌지만, 여전히 법 감정과 현실적 양형 사이의 괴리는 크다. 성범죄나 묻지마 살인 등 강력 흉악범죄가 보도되면 대중의 복수심은 불타오른다. 엄벌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름의 형량을 정해 놓고 판결과 차이가 나면 솜방망이라고 비난의 화살을 쏟아붓는다. 그러니 국민에게 판결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양형의 이유를 소상히 설명하지 않으면 불만이 쌓이고 사법 불신으로 이어진다. 언론이 관심을 두고 보도한 형사사건은 검사와 피고인, 피해자만이 당사자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당사자처럼 느낀다. 그래서 그들 모두와 소통해야 한다. 신임 대법원장은 재판과 사법 정보의 공개 범위를 넓혀 재판의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여, 서로 간에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신뢰가 싹틀 수 있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여야의 동의를 받은 만큼 사법부 수장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하태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장 고려대 명예교수

하태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장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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