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왼쪽에서 두번째)이 지난 11일 층간소음 기준을 미충족한 아파트의 준공을 불허하는 ‘공동주택 층간소음 해소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2013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면목동 층간소음 살인사건’이다. 가족들이 모인 설 연휴 때, 아파트 윗집 발소리 소음에 항의하던 아랫집 남성이 시비 끝에 흉기를 휘둘러 윗집 30대 형제 2명을 살해했다. 형제의 아버지도 그 충격 여파로 사건 발생 19일 만에 숨졌다. 이웃 간 층간소음 갈등이 빚은 참극이었다. 2000년대부터 나온 층간소음 민원은 처음에 일부 예민한 사람들 문제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층간소음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층간소음 다툼이 잔혹한 사건으로 확대되는 악순환은 여전하다. 정부가 시시때때로 소음 기준을 강화하는 대책을 쏟아냈어도 백약이 무효였다. 근래 5년 새 층간소음으로 인한 강력 범죄가 10배나 늘어나고 관련 민원 건수도 2.4배나 증가했다니 오히려 상황은 더 악화됐다. 흉기 폭행, 난투극, 방화, 재물손괴, ‘보복 소음’…. 최근까지도 이런 강력 범죄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범죄 양태는 각기 달라도 촉발 원인은 층간소음, 한 가지다.
윗집 소음에 불만을 품은 30대 남성이 2021년 10월부터 한 달간 보복 행위를 했다. 새벽 시간에 TV를 크게 틀거나 고함지르고 도구로 벽과 천장을 두드려 ‘쿵쿵’ 소리를 내며 31차례나 소음을 일으켰다.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남성에 대해 지난 14일 대법원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층간소음 분쟁 과정에서 고의로, 반복해 공포심을 유발하는 소음을 냈다면 스토킹 범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다. 과도한 보복 소음의 처벌 수위를 높인 것이다. 그간 층간소음 행위는 주로 경범죄로 처벌돼 10만원 이하 벌금에 그쳤다.
국민의 60% 이상이 아파트에 사는 상황에서 층간소음은 ‘국민 스트레스’로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 층간소음 갈등을 다룬 책 <당신은 아파트에 살면 안 된다>를 쓴 차상곤씨는 “층간소음 없는 아파트는 없다”고 했다. 이웃끼리 화해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정부 차원의 특단 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국토교통부가 층간소음 기준 미달 시 준공 승인을 불허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는데 실효를 거둘지 지켜볼 일이다. 규제 강화로 집값 올리는 일이 생겨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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