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의 문장] “그러니까 왜 기어 나왔어”](https://img.khan.co.kr/news/2023/12/15/l_2023121601000509900051491.jpg)
<전자적 숲; 더 멀리 도망치기> 민음사
동물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한자리를 계속 맴돌거나 지신의 배설물을 먹는 등의 목적 없고 지속적인 행동을 ‘정형행동’이라고 한다. 무한경쟁을 하라고 채찍질하면서도 마음 건강을 챙기라는 메시지가 끊임없이 나오는 기묘한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6편의 시와 7편의 소설 모음집 <전자적 숲; 더 멀리 도망치기>에는 유튜브 쇼츠 영상을 하루 종일 돌려보는 인간의 행동을 동물의 ‘정형행동’에 비유하는 단편소설이 나온다. 서이제의 ‘더 멀리 도망치기’에서 주인공 ‘나’는 폭력적인 인물 ‘종’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종’과 경마를 하고 동물원에도 간다. 동물원에서 늑대를 만난다. “철창 안에 갇힌 늑대는 아까부터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철창 앞을 끊임없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던 것인데, 왜 저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경마와 종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밤새 유튜브 쇼츠 영상을 재생한다. 그날 동물원에서 탈출한 말이 찍힌 영상도 보게 된다. 겁에 질린 말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나’는 말을 향해 “왜 기어 나왔어”라고 혼잣말을 한다. 짧은 영상에 갇힌 우리의 행동과 철창에 갇힌 늑대, 뛰쳐나온 말, 누가 행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