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분권형 책임장관제’를 공약했다. 하지만 지난 6월 대통령실 참모진으로 채운 차관 인사부터 현재 진행 중인 ‘2기 개각’을 보면, 그 어느 곳에도 책임장관제란 말이 무색하다. 국정의 안정성·연속성은 뒷전이고, ‘총선용·회전문’ 개각을 이어가고 있다. ‘몇개월 짜리’ 장관은 총선에 내보내고, 후임 장관은 이리저리 돌려막기로 채우고 있는 것이다.
지난 17일 교체된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대표적 사례이다. 내년 총선의 수원 지역 출마가 예상되는 방 장관이 임명 3개월 만에 물러났고, 신임 장관엔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이 내정됐다. 대통령실은 지난 8월 방 장관 임명 때 ‘핵심 전략산업 육성·규제 혁신·수출 증진의 적임자’라 해놓고, 그제는 “정부 대신 국회로 진출해도 (국가에) 크게 대미지라고 할 건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3개월도 내다보지 못하는 국정 혼선을 드러내고, 장관 스펙만 쌓아준 주먹구구 인사를 보며 어이없고 허망할 따름이다.
12·4 개각도 마찬가지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조승환 해양수산·박민식 보훈·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모두 총선 출마를 위해 떠났다. 경제 위기가 깊어지는데도 경제사령탑은 새해 예산안도 처리하지 않고 교체됐다. 그 와중에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탄핵 직전 3개월 만에 물러난 자리는 불과 5개월 된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이 옮겨서 메우려 하고 있다. 주머니 속 공깃돌처럼, 장관 자리를 참으로 가볍게 보는 용인술이다.
한동훈 법무장관의 ‘여당 비대위원장 임명설’이 커지고 있다. 김기현 전 대표가 총선 불출마가 아닌 당대표직 사퇴로 틀면서 여권 전체가 대혼란에 빠졌다. 당초 선대위원장 후보로 거명된 한 장관의 총선 차출설이 비대위원장으로 앞당겨진 것이다. 문제는 급하게 ‘한동훈 비대위’를 구상하다보니 법무장관 내정 전 한 장관이 사표를 내고 대통령이 즉각 수리하는 편법까지 거들먹거리고 있다. 총선용·돌려막기 개각의 정점에 한 장관이 있는 꼴이다.
민생과 경제가 어렵고 협치도 겉돌고 있다. 그런데도 국정 운영의 축이자 그 책임이 작지 않은 장관들이 도미노처럼 총선 카드로 내던져지고 있다. 최상목 기재부 장관 내정자가 지명 일성으로 “임중도원”이라고 했다. 임무는 중하고 길은 멀다는 뜻이다. 이 네 글자는 지금 윤 대통령이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