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경복궁 담벼락 스프레이 낙서 훼손 범죄가 발생한지 사흘째 되는 19일 복구 작업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안내문이 세워진 천막 뒤로 흰색 작업복을 입은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들이 오가고 있다. 김세훈 기자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영추문 인근은 진청색 천막과 가림판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천막 사이로 드릴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안쪽으로 희뿌연 돌가루가 흩날렸다. 흰 작업복을 입은 복원 전문가들이 양손에 세척 장비를 들고 천막을 드나들었다. 한파 특보가 발효된 이날 ‘낙서 테러’가 발생한 경복궁 일대에서는 낙서 제거 작업이 한창이었다.
문화재청은 지난 17일부터 보존복구 전문가 20명 투입해 담벼락 복구 작업 진행하고 있다. 복구까지는 짧아도 닷새가량은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는 큰 차질 없이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게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주된 복원 방식은 레이저·망치 등을 동원한 물리적 방식이다. 먼저 스프레이가 묻은 석재 표면을 망치·끌 등으로 갈아내고 레이저·블라스팅(작은 돌가루를 분사해 오염물을 제거하는 방식) 장비를 투입해 틈에 낀 잉크를 제거하는 식이다. 비교적 작은 돌들로 이뤄진 쪽문 쪽은 레이저 방식, 큰 석재 위주인 영추문 쪽은 블라스팅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19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영추문 인근에서 복원 전문가들이 담벼락 낙서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김세훈 기자
관건은 날씨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상태에서는 분사 장비 내에 있는 수분이 얼어 작동을 멈추기 때문이다. 석재 표면이 얼어붙어 잉크 제거가 어려워지는 문제도 있다. 복원팀은 레이저 클리닉 2대와 블라스팅 기기 1대를 해외업체에서 임차해 오는 등 작업 속도를 높이고 있다. 정소영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장은 “화학적 세척은 추위 때문에 작업 속도가 안 나와 첫날 이후부터는 물리적 방식 위주로 진행하고 있다”며 “가급적 장비를 통한 제거 작업은 맹추위가 예고된 목요일 이전까지 끝내려고 하는데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정 과장은 “완전 복원 여부는 스프레이가 얼마만큼 스며들었는지 등 변수가 많아 확답하기가 어렵다”며 “스프레이 제거 작업을 끝내고 복원된 부분과 다른 부분과의 색을 맞추는 작업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경찰이 엄정 대응을 예고하면서 ‘낙서 테러범’에 대한 처벌 수위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서울경찰청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해당 사건은 3년 이상의 징역 받을 수 있는 중대 범죄”라고 했다. 지난 17일 영추문 담벼락에 낙서한 ‘모방 범죄’로 추정되는 용의자 1명은 전날 경찰에 자수해 입건됐다.
경찰은 단순 재물손괴가 아니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문화재보호법은 92조 1항은 ‘국가지정문화재를 손상·절취 또는 은닉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효용을 해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훼손자에게 훼손에 따른 원상 복구를 명하거나 관련 비용을 청구할 수도 있다.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들이 지난 17일 서울 경복궁 담벼락에 스프레이로 적힌 낙서를 지우고 있다. 조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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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비슷한 사례로는 2017년 ‘언양읍성 스프레이 사건’이 있다. 2017년 8월 40대 남성 A씨는 울산 울주 언양읍성 성벽 70m 구간에 붉은 스프레이로 미군을 비하하는 취지의 낙서를 적었다. 언양읍성은 사적 제153호다. A씨는 문화재보호법 위반 및 공용물건 손상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법원은 “피고인은 특별한 이유 없이 낙서했으며, 특히 국가지정문화재를 훼손한 것은 죄가 무겁다”고 했다. 2008년 숭례문에 불을 지른 채종기씨는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다만 문화재보호법은 그 대상이 국가지정문화재에 국한된다. 2012년 40대 목사 B씨는 대구 사찰 동화사에서 불교 서적을 훼손하고 탱화에 낙서를 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서적과 탱화는 국가지정문화재에 해당하지 않아 B씨에게는 문화재보호법이 아닌 재물손괴 혐의만 적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