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외교를 평가하기에 앞서 호주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움직임을 보자.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지난달 방중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양국관계 개선에 합의했다. 2018년 이후 ‘친미반중’ 노선을 걷던 호주 외교의 극적 전환이다. 호주는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미국·영국과 안보 삼각동맹인 ‘오커스’에 참가하며 인도·태평양에서 대중 견제의 선두에 섰다. 그러나 지난해 5월 노동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해빙무드가 조성됐다. 중국은 전력난 해소를 위해 호주산 석탄이 필요했고, 호주는 거대한 중국 시장을 놓칠 수 없는 경제적 이해관계도 작용했다. 미국과의 동맹 강화로 핵잠수함 기술을 확보한 뒤 대중관계에서 자율성을 확대하는 호주판 ‘균형 외교’가 돋보인다.
중동의 대표적 친미국가였던 사우디는 ‘인권 외교’를 내세운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 관계가 악화되자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독자 외교에 나섰다. 미국의 러시아 제재에 불참한 채 러시아·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했다. 중국 중재로 이란과 관계정상화에 합의하더니 지난 15일에는 중국·이란과 ‘3자 공동위원회’를 개최하며 중국 밀착을 가속화했다. 사우디는 시리아와의 화해, 예멘·수단 내전 중재로 국제사회에서 평화·중재자 이미지를 쌓았다. 엑스포 유치전에서 한국을 4배 표차로 따돌린 것은 사우디의 ‘플러스 외교’와 무관치 않다.
윤석열 정부의 올해 외교 성적은 ‘외화내빈’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만큼 참담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에 너무 자주 들어오신다’는 비아냥을 살 정도로 해외를 누볐으나 ‘29 대 119’의 엑스포 유치전 결과가 보여주듯 실익은 없었고, 고립감도 커졌다. 미·일 편중의 ‘가치 외교’를 내세우며 중국·러시아를 적으로 돌리다시피 한 ‘거친 외교’의 후과다. 지난달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미·중은 4시간 동안의 정상회담에서 미·중 군사 소통채널을 복구하는 등 관계안정화에 합의했고, 중·일도 65분간 만나 “공통의 전략적 이해에 기반한 호혜적 관계를 포괄적으로 촉진”(일본 외무성)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시진핑은 그러나 윤 대통령과는 3분간 선 채로 몇마디 주고받은 게 전부였다.
윤석열 정부가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에 대응해 미·일과의 협력을 강화한 것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 문제는 제쳐두고 중국 견제에 몰두하고 있다. 중국의 최근접국인 한국의 셈법이 미·일과 같을 수 없는데도, 윤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반도 문제를 넘어선 역할 확대’에 합의하며 대중 전선의 첨병을 자처했다.
게다가 미·일의 행동대장인 양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한 것이 화를 키웠다. 윤 대통령은 외신 인터뷰에서 중국에 ‘내정간섭’에 가까운 훈계를 했고, 한·영 정상회담에서는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문제를 굳이 합의문에 집어넣었다. APEC 기간이던 지난달 14일 서울에서 국방부 주최로 연 한국·유엔군사령부 회원국 국방장관회의는 누가 보더라도 ‘중국 견제를 위한 동아시아판 나토’ 준비위였다. 시진핑이 윤 대통령과 만나지 않고, 한·중·일 정상회의 연내 개최가 무산된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간 다시 열릴 북핵 협상 국면에서 한국만 ‘패싱’ 당할 우려가 있다. APEC에서 미·중, 중·일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를 비롯한 북한 문제를 논의했다고 한다. 중국은 최근 들어 한반도 문제의 쌍궤병행(비핵화·평화협상 동시진행) 해법을 다시 꺼내고 있다. 한국이 대북강경 태도를 풀지 않는 동안 6자 회담 참가국들이 한반도 문제에 간여하려는 움직임이다. 내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하게 되면 한국은 소외된 채 북·미 대화가 이뤄지는 ‘통미봉남’ 사태도 벌어질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어퍼컷 세리머니’ 하듯 외교를 펼쳐왔다. ‘일본의 최소한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뿌리친 채 과거사를 ‘통 크게’ 양보했고, 뒷감당 계산 없는 오버액션으로 중·러를 자극했다. 러시아는 북한과 밀착 하고 있고, 중국은 흑연·요소수·인산암모늄 수출 통제로 한국에 ‘카운터 블로’를 먹이려 한다. 호주는 석탄이라도 있지만, 한국은 중국 원자재 없이는 공장이 돌아갈 수 없다. 개방형 통상국가라는 정체성을 망각한 ‘직진형 외교’가 경제까지 멍들게 하고 있다. 대통령 자체가 외교의 최대 리스크이자 마이너스임을 이제 모두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