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전력 생산과 소비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처음으로 절반을 넘었다. 지난 18일 공개된 독일 연방 에너지·수리연합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태양수소에너지연구센터 추산에 따르면 올해 독일의 발전량 5081억kwh 중 태양광·바이오매스·해상풍력·수력 등 재생에너지는 2670억kwh로 52.5%를 차지했다. 지난해 44%에서 대폭 증가한 것이다. 전체 발전량이 11% 줄어든 가운데 다른 에너지원을 줄이는 대신 재생에너지를 높인 결과다. 독일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80%로 높일 계획이다. 코스타리카, 아이슬란드처럼 재생에너지 비율이 90% 이상인 나라도 있지만, 한국과 비슷한 규모 국가로는 독일이 독보적이다. 10%를 밑돌며 세계 최하위권인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고려하면 놀라울 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직접 영향권에 있는 독일의 에너지 여건은 한국보다 더 어렵다.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았던 독일은 전쟁 이후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었다. 그럼에도 2050년 탄소중립을 향해 흔들림 없이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독일은 러시아산 가스 공급의 공백을 대체로 재생에너지로 채웠다. 에너지 전환을 오래 준비해온 덕에 가능했다.
그 와중에 독일은 지난 4월 마지막 원전을 폐쇄했다. 독일 정부는 에너지 위기 속에서 석탄화력과 원전 중 무엇을 먼저 퇴출할 것인지 어려운 고민에 직면했는데, 결국 탈원전을 우선했다. 원전을 남겨두면 그것과 제로섬 관계에 있는 재생에너지 투자 유인이 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2000년 사민당·녹색당 연립정부가 결정하고, 2011년 기민련·기사련 연정이 재확인한 탈원전 결론을 2023년 사민당·녹색당·자민당 연정이 이행한 것일 뿐이다. 독일 사회가 정권을 초월해 내린 판단이다.
분명한 것은 독일이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선진국의 책임에 가장 부합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정책이 동시대인뿐만 아니라 후손들에게도 유익할 것이라는 믿음이 공유되고 있다. 그게 가능한 것은 독일 특유의 합의정치의 전통, 약속을 중시하는 정치권, 그리고 시민들의 폭넓은 참여가 있기 때문이다. 독일 사례가 지고지선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재정난을 겪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어려운 와중에도 왜 굳이 이 길을 가려는 것인지 한국 사회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