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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하는 사람

세밑에 고병권의 산문집 <사람을 목격한 사람>(사계절, 2023)을 읽었다.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는 책이었다. 첫 번째 사람이 도와달라며 손을 내밀 때 소매가 잡히는 자리에 두 번째 사람이 있고, 그 두 사람을 묵묵히 지켜보는 세 번째 사람이 있다. 저자는 세 번째 자리에 서서 이 사람들을 기록한다. 아프고 미안한 사람, 보이지 않는 사람, 포획된 사람, 함께 남은 사람, 싸우는 사람, 연대하는 사람을.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소리가 작아서가 아니다. 다른 이들이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러 귀를 기울여야만, 듣겠다고 작정해야만 들리는 목소리다.

책에 실려 있는 글 ‘구차한 고통의 언어’를 소개한다. 저자는 소수자들이 호소할 때조차 주변에 미안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미안한 사람의 자세는 낮아진다. 그는 변명하듯 말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재빨리 본인의 상태나 성격을 탓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여러 가지 이유로 위축된다. 더 많이 일할 수 없어서, 더 빨리 움직일 수 없어서, 어떤 동작을 혼자서 할 수 없어서 그들은 미안하다. 그들을 돕는 이는 환경의 미흡함을 떠올릴 틈도 없이 돌봄을 베푸는 자리에 서게 된다.

고병권은 “우리 사회가 미안해하지 않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미안해진다”라고 말한다. 사회가 미리 제공했어야 할 서비스가 부재했기에, 장애인들은 부탁할 일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스스로 ‘돌봄의 짐’이라 생각해 외출도 꺼리게 된다. 장애인 콜택시를 부르거나 저상 버스에 오르거나 지하철을 타는 것은 미안함이 양산되는 일이다. 시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일들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난처한 일이 된다. 그는 “우리는 의존에서 벗어남으로써가 아니라 적절한 의존 방식을 찾음으로써 자율적 삶을 누릴 수 있다”라고 덧붙인다. 함께함으로써만 역설적으로 자율적 삶을 추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미안해하는 사람은 져도 되는 사람, 굳이 이기려고 하지 않는 사람, 아니 더 정확하게는 삶을 승부로 보지 않는 사람이다. 시스템에 의해 이미 졌다고 통보받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안도한다. 사과하고 양해를 구해야 상대의 마음이 누그러지니까. 그런데 이때의 미안함에는 두 가지 뜻이 혼재되어 있다. ‘미안하다’의 첫 번째 뜻은 “남에게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다”이다. 보통 잘못을 저지른 뒤 느끼는 바로 그 미안함이다. 두 번째 뜻은 “겸손히 양해를 구하는 뜻을 나타내는 말”인데, 가볍게 부탁할 때 의례적으로 쓰인다.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들은 두 번째 뜻의 ‘미안하다’만 사용해도 충분할 때조차 말속에 첫 번째 뜻을 담는다. 마치 존재하는 일 자체가 미안하다는 것처럼. 이를 만든 것은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와 장애인의 삶을 상상해본 적 없는(상상해볼 필요가 없는) 비장애인 시민들이다. ‘사람을 목격한 사람’은 이 장면을 마지막까지 응시하는 사람일 것이다. ‘시민 여러분’의 편의를 위해 장애인이 지하철 역사 밖으로 끌려 나오는 장면을, 그의 시민권이 너무도 손쉽게 박탈당하는 장면을, 용기를 내 권리를 주장할 때조차 먼저 “미안하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이것이 지금 한국 사회가 장애인을, 소수자를 대하는 방식이다.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있는지조차 모르는 문제도 있다. 소수자에게 흔쾌히 확성기를 쥐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기회가 생겨 권리를 외칠 때조차 ‘시민’들의 생활에 지장을 준다며 제지당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습관적으로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에 비하면 이들의 ‘미안함’은 얼마나 절박한가. 정치인들의 입에서는 끝끝내 나오지 않는 저 말이 이들 입에서는 매일없이 쏟아진다. 사람을 목격한 사람은, 이들 앞에서 미안해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오은 시인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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