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살인” 구시대적 경찰 수사 관행 질타
언론의 경마식 보도·유튜브 채널 비판도
전문가 “피의사실 공표·선정 보도 더불어
자극적 뉴스에 열광한 대중도 책임 있어”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배우 이선균씨의 빈소. 사진공동취재단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배우 이선균씨(48)가 사망하자 ‘사법살인’이라며 경찰의 구시대적 수사 관행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마식 보도를 이어온 언론과 미확인 정보를 퍼뜨린 유튜브 채널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이씨가 사망하기 하루 전까지 약 두 달간 관련 보도가 약 1만 건을 넘긴 것으로 파악됐다.
가족 근황부터 사적 대화까지···‘선 넘은’ 보도들
한국언론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에서 검색된 배우 이선균씨 관련 보도 총 2820건(54개 언론사 기준)에 대한 워드클라우드 분석 결과. 검색 기간은 10일19일에서 12월26일까지다. 빅카인즈 갈무리
이씨의 마약 투약 혐의는 지난 10월19일 정식 수사가 개시되기 전인 내사 단계에서 언론에 알려졌다. 경찰은 이씨를 세 차례 공개 소환했다. 간이 시약 검사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정밀 감정에선 모두 음성 판정이 나왔다. 이씨는 “마약인 줄 몰랐다”며 범행 고의성을 줄곧 부인해왔다. 그는 사망 하루 전까지도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요청하는 등 변호인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경향신문은 28일 한국언론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에서 10일19일부터 12월26일까지 ‘이선균’ ‘마약’ 키워드가 함께 들어간 보도를 검색했다. 등록 언론사(54개)가 보도한 기사는 총 2820건에 이르렀다. 빅카인즈 검색에 포함되지 않는 인터넷 매체 등이 포함된 네이버 뉴스 검색 결과로는 같은 기간 총 1만418건의 기사가 검색됐다. 69일간 하루 평균 150건 기사가 쏟아진 것이다.
보도 양태를 보면 10월20일 오후 이씨 소속사가 “공갈·협박을 받고 있다”는 내용의 공식입장을 밝히기 전부터 일부 언론은 이씨와 그의 가족 ‘근황’을 전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한 무속인이 과거 유튜브 영상에서 이씨를 언급한 내용도 ‘마약’이란 단어와 엮여 보도됐다. 이씨 소속사의 입장문이 나온 후에는 이씨의 실명을 언급한 기사와 수사 속보가 줄을 이었다.
특히 지난 27일 이씨 사망 직후에는 이씨와 유흥업소 실장 A씨의 사적 통화 내용을 보도한 지난달 24일자 KBS 보도가 누리꾼의 뭇매를 맞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는 이날까지 해당 보도에 대한 민원이 2건 접수됐다. 방심위는 민원 처리 절차에 따라 심의 여부, 신속 심의 여부 등을 결정할 계획이다. A씨의 일방적 경찰 진술이 담긴 일부 보도를 두고도 비판이 나왔다.
죽음마저 장사한 유튜버, 대중 앞에서 망신 준 경찰
마약류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배우 이선균씨가 지난 27일 서울 성북구 와룡공원 인근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사건 현장에는 취재진과 유튜버 등이 몰렸다. 조태형 기자
유튜브에선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통한 ‘인격살인’이 벌어졌다.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는 이씨의 마약 투약 혐의가 불거진 후 지속적으로 관련 영상을 게시했다. 약 2개월간 ’충격단독’ ‘충격영상’ 등의 머리말과 이씨 사진이 담긴 썸네일 영상이 10여개로, 사건 관계자들의 실명과 얼굴이 여과없이 공개됐다. 사망 전날인 지난 26일에는 이씨의 육성이 담긴 녹취를 선정적 제목과 함께 공개하기도 했다.
가로세로연구소는 이씨 사망 직후 비판이 쏟아지자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어 당당히 이야기한다.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지 이런 방식으로 죄를 회피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며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을 언급하는 입장문을 냈다.
일부 유튜버들은 이씨의 죽음마저 ‘돈벌이’로 이용했다. 이씨 소속사에 따르면 전날 꾸려진 이씨의 빈소에서는 일부 유튜버 등의 소란이 발생했다. 소속사는 입장문을 통해 “자신을 유튜버로 소개한 분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장례식장을 방문해 소란이 빚어지는 등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잔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디 황망히 떠나보내야 하는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유가족과 동료, 지인 모두가 원하는 만큼 애도하고 추모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28일 오후 인천경찰청 청사에서 김희중 인천경찰청장이 배우 이선균씨 사건과 관련해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리한 수사’라는 지적에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사를 했다”는 입장을 유지해온 경찰은 이날도 “수사 정보 유출은 없었다”고 항변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청주 청원경찰서에서 열린 특별 승진임용식 참석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경찰 수사가 잘못돼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세 번째 공개소환 당시 이씨 측이 ‘비노출 출석’을 요청했으나 경찰이 거부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지하주차장을 통한 완전 비노출 출석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취재진이 몰려 안전사고 우려가 예측됐다”며 “이에 전과 같이 출석할 것을 설명했고, 변호인도 동의했다”고 해명했다.
누가 죄인인가···전문가들 “온 사회의 책임”
전문가들은 ‘경찰-언론-유튜브’로 이어지는 피의사실 공표와 선정적 보도의 악순환이 이씨를 죽음으로 내몬 배경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신민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이씨 등 연예인은 의혹이 제기되는 순간부터 일거수일투족이 생중계되고, 수사기관에 소환될 때마다 경과와 결과가 언론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증폭된다”며 “유명인이란 이유로 인권이 말살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 대학원 교수는 “경찰이 이씨를 소환할 때 어느 정도로 구체적인 혐의를 파악하고 소환했느냐가 본질적 문제”라며 “혐의가 명백하다면 공인인 연예인을 공개소환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세 차례나 불렀음에도 수사에 진전이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 “유튜브의 경우엔 조회수, 슈퍼챗(후원) 등을 통해 금전적 이익을 얻기 때문에 생산자와 공급자의 경계가 모호해 윤리적 관점을 적용하기도 쉽지 않다”면서 “중요한 건 유튜브 등에서 나오는 자극적 내용을 기성 언론이 수면 위로 끌어올리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특히나 공영방송이 확정되지 않은 범죄에 대한 녹취물을 보도하는 건 선을 넘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했다. 원 교수는 “한편으론 (이씨의 죽음에) 공분을 표시하면서도 자극적인 뉴스에 열광하는 대중들의 모습도 분명히 존재한다”면서 “그러한 점에서는 온 사회의 책임이라고도 생각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