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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문화적 정서: ‘즐거움’과 ‘친절함’

많은 사람들에게 20대는 힘들다. 부족한 자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해서다. 이는 수많은 실험을 통해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구축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20대의 경험은 나머지 인생 동안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를 고려하면 세대 간의 갈등은 현재의 청년과 과거의 청년이 만나 충돌하는 것이다. 따라서 20대와 40대의 대화는 어쩌면 20년의 시간차가 아니라 40년의 시간차를 두고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우리 몸이 역사적인 산물임을 보여준다. 과거의 경험은 우리의 몸속에 켜켜이 새겨져 특정한 생각, 물건, 사건들에 대한 현재의 반응을 일으킨다.

나는 1990년대에 20대를 보냈다. 나와 같은 시기에 20대를 보낸 사람들이 이제는 중장년층이 되며, 20대 때에 주어지지 않았던 ‘말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다. 미디어 산업에서 지난 십년 사이 쏟아져나온 1990년대 문화를 소재로 한 미디어 상품은 주요 생산자들의 세대교체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1980년대 20대를 보낸 세대들이 운동권 문화를 기반으로 ‘대의’를 강조했다면, 1990년대 20대를 보낸 세대들은 ‘대의’를 내세우는 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1990년대는 흔히 한국에서 ‘개인주의’가 확산된 시기라고 말한다. 집단적 가치나 문화보다 개개인의 개성이 우선시되기 시작한 때라는 것이다. 1990년대 당시 이러한 현상은 한국 사회의 진보와 발전을 상징하는 것으로 재현되기도 했지만, 대체로 버릇없는 소비지상주의 젊은이들로 비난받았다. 지금의 ‘MZ세대’처럼, ‘신세대’ 역시 청년 당사자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정의가 아니라 마케팅과 언론 매체가 구성한 것이었다.

1990년대의 청년들은 이제 자신이 속한 세대를 스스로 규정할 수 있는 자리에서, 1990년대를 소환하여 자신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의 의미를 재구축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1990년대 문화를 다룬 가장 성공적인 미디어 상품인 <응답하라 1997>(2012), <응답하라 1994>(2013)를 만든 신원호 피디와 이우정 작가이다. 신원호 피디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은 1990년대 문화적 정서를 보여준다. 공중파 예능 방송 피디로 장기간 일했던 이들은 낯선 케이블 티비 드라마 제작에 도전하며 “우리가 언제부터 성공하려고 일했나? 재밌는 것을 했지”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했다고 한다. ‘성공’이 결과 중심적 사고라면, ‘재미’와 ‘즐거움’은 과정 중심적 사고이다. 이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을 지켜나가며 실험해보는 과정에서 느끼는 ‘살아 있음’의 감각이다.

이러한 삶의 지향점은 비단 1990년대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미디어 상품에서만이 아니라, 현재 혹은 과거를 다루는 미디어 상품에서도 드러난다.

예컨대, <응답하라> 시리즈에 이어 만든 <슬기로운 의사생활>(2020)에서 제작자들은 “악인이 없고 모두가 착한 사람들인 판타지를 구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는 권력을 잡기 위해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친절함’으로 타인과 자신의 삶은 지켜나가는 것의 가치를 구현한다. 유사하게 홍정은·미란 자매의 <환혼>(2022, 2023)은 남자 주인공의 직접적인 대사를 통해 “세상을 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나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드라마는 “온갖 대의명분으로 정당화하는 것”에 대한 불신과 의문을 제기하며, 대의명분을 내세워 자신의 권력을 확장하는 데 주력하는 세력에 대항하여, 삶에서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는 것을 소중하게 지키는 것의 정당성을 그려낸다.

연말이다. 여전히 1990년대 문화적 정서의 자장 속에 살고 있는 나는 새해에 즐거움과 친절함을 지켜나가는 삶을 만들어 나가기를 기원한다. 즐거움과 친절함은 우리 삶의 ‘숨’ 쉴 수 있는 순간들을 만들기 때문이다.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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