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는 대통령 재임 중 백악관에서 시와 음악이 어우러진 공연을 종종 열었다.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집안 출신 젊은 극작가 린-마누엘 미란다가 2009년 5월에 초청받았는데, 그는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의 일생을 소재로 한 힙합 뮤지컬의 첫 곡을 선보이겠다고 했다. 오바마는 정중하게 격려하면서도 내심 회의적으로 여겼지만, 그가 무대에서 랩을 시작하자 객석은 열광했고 대통령 부부도 기립박수를 보냈다.
마침내 2015년 무대에 오른 뮤지컬 <해밀턴>은 지금까지도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티켓을 구하기 힘든 작품이다. 가사에 여러 번 나오는 것처럼 ‘사생아, 고아, 부정한 여인의 아들’이 건국의 아버지, 웬만한 대통령보다 후대에 큰 영향을 남기는 극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해밀턴은 조지 워싱턴의 측근으로 미국 연방정부의 기초를 세우는 과정에서 매우 많은 업적을 남겼고, 10달러 지폐에 그의 초상이 새겨져 있다. 한편 정적이자 현직 부통령 에런 버와 1804년에 결투를 벌이다 사망한 풍운아이기도 하다.
랩과 힙합을 기반으로 하는 게 두드러진 특징이지만, 그보다는 독립전쟁 당시 영국 왕 조지 3세를 제외한 대다수 출연자를 비백인으로 캐스팅하는 점이 이 작품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미국 헌법은 ‘우리 미국 인민’(We the People)을 주체로 하지만, 실제 미국 독립 당시 ‘인민’은 재산이 있는 백인 남성에 한정됐다. <해밀턴>은 이를 전복하고 재해석한다.
백인 실존 인물을 비백인 배우가 연기하는 것은 ‘우리 미국 인민’의 본래 의미를 드러내는 장치다. 카리브해 출신으로 미국 본토에 온 해밀턴과 미국 독립전쟁에 자원한 프랑스인 라파예트가 “이민자는 일을 되게 만들지!”라고 노래하면 객석에서 환호가 터진다. 독립선언서 중 “모든 ‘사람(men)’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부분을 인용하며, 이를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에게 다음에는 ‘여성(women)’을 빼먹지 말라고 얘기하겠다는 부분도 있다.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게 워싱턴의 내각 회의 장면에는 여성이 장관으로 등장한다.
제작자 린-마누엘 미란다는 “이 작품은 오늘의 미국이 재해석하여 들려주는 미국 건국의 이야기”라 설명한다. 현재 미국의 관점으로 미국이 독립 당시 가졌던 이상을 돌아보고, 그렇게 재해석된 과거의 미국을 통해 다시 지금 미국의 현실을 비추려는 작품이다. 민주당 소속 오바마가 대통령 재임 중 <해밀턴> 공연을 찾고, 공화당의 마이크 펜스도 부통령 당선자 시절 야유를 감수하고 이 공연에 간 데는 이유가 있다.
2024년의 국가적 중대사는 우선 4월10일 총선이다. 선거는 이 나라의 스토리를 어떻게 이어갈지에 대한 관점과 생각을 놓고 여러 정치세력이 경쟁하고 국민의 심판과 선택을 받는 장이다. 식민지배를 벗어나 헌정을 시작한 지 75년이 조금 넘었지만, 한국은 그 짧은 시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달성하고 선진국이 되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우리가 다시 들여다볼 과거의 이야기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 써 나갈 스토리 모두 풍성하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대부분 뻔한 옛이야기만 반복하고 자기 버전이 아닌 스토리는 무시한다. 우리가 원래 가졌던 이상을 지금의 관점에서 이곳의 현실을 반영하여 재해석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개발독재 시대의 공과를 제대로 평가하자면서 실제로는 공을 치켜세우기 위해 과를 덮자는 것이면 어쩌란 말인가. 고도성장 시절의 향수에 젖어 ‘요즘 젊은 녀석들’을 향해 이전의 관행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번영의 시기를 주도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지금에 맞는 새로운 성장의 길을 제시해야 하지 않나. 김대중·노무현 정신이 매사에 ‘김대중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만 반복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정치인을 향해 ‘노무현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난하는 정도라면 곤란하지 않을까.
정치이든 아니면 다른 영역이든 우리 모두는 과거의 성취와 오류 위에 새로운 미래를 쌓아 간다. 지나온 시대 그리고 과거의 큰 인물의 업적과 생각에서 본받아야 할 바가 있다면, 이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직면한 문제를 놓고 지금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제시하는 일이 바로 정치다. 뮤지컬 <해밀턴>이 ‘우리 미국 인민’에 백인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 그리고 다양한 인종이 포함된다는 점을 무대에 구현해서 눈앞에 보여주고 그 때문에 독보적 뮤지컬이라는 호평을 얻은 것처럼 말이다. 공연 예술도 그 정도로 하는데, 현실에 발을 디디는 가능성의 예술이자 우리 일상과 미래를 결정할 힘을 가진 정치는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