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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너머로 낯선 소리가 들려올 때

입력 2024.01.02 20:13

연말연초가 되면 늘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의 책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 수록된 엽편소설 ‘벽 - 짤막한 크리스마스 이야기’이다.

소설은 작가인 ‘나’가 의사인 친구에게 가볍게 하소연하며 시작한다. 그럴싸한 교훈적인 이야기를 써서 신문사의 편집장에게 주기로 했는데 크리스마스가 다가와도 어떤 영감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벽에 부딪힌 것 같다니까!” ‘나’는 탄식한다.

그러자 의사인 친구가 말한다. “벽이라고? 그렇다면 자넨 이미 멋진 주제를 찾아낸 것 같구먼.” 친구는 어느 해 12월31일 빈민가에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해준다.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과 따뜻함이 필요한 연말이었다. 그만큼 홀로인 사람은 더욱 사무치게 외로워지는 날이기도 했다. 의사는 슬프게도 일찌감치 생을 마감한 젊은 청년의 사망 확인을 위해 가난한 동네를 찾아간다.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는 밤이었다. 도착한 방은 너무나 초라하고 싸늘했고 그날 밤 목을 매서 자살한 스무 살가량의 청년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기다리고 있었다.

방 안에는 청년이 남긴 유서가 있었고 자신이 왜 죽음을 택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내용인즉슨, 나는 고통스러운 고독과 세상에 대한 총체적인 혐오감으로 죽는다는 것이었다. 유서의 내용은 격정에 휩싸여 이어졌다. 청년은 자신의 바로 옆집에 사는 여자를 좋아하고 있었노라고 고백했다. 그 아가씨가 어찌나 천사같이 아름다운지 감히 말도 붙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필 자신이 참을 수 없는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그날 밤 그때에 벽 너머로 ‘독특한 소리’가 넘어왔다. 침대의 삐거덕거리는 소리, 젊은 여자의 신음 소리가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청년이 사는 허름한 방 안으로 들려온 것이다. 청년은 벽 너머로 들려온 소리와 그럴수록 커져간 자신의 분노에 찬 절망을 유서에 세세히 묘사해 놓았다.

소리는 한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자신이 감히 말 한마디 못 붙였던 아름다운 아가씨의 격정적인 신음 소리는 순수하고 외로웠던 청년의 마음에 일격을 가했고 청년의 절망감은 극대화되어 커튼줄을 빼 목을 매기에 이르렀다.

사망 확인을 마치고 청년의 방을 나서던 의사는 이상한 호기심이 생겨 옆집 아가씨의 방문을 두드려본다. 여러번 문을 두드려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의사는 짐작한다. 사랑의 유희를 끝내고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구나. 혹은 두려움에 빠져 둘이 꼭 끌어안고 떨고 있을까? 그렇게 뒤돌아서려는데 아가씨의 방문을 열고 들어간 집주인이 꽥 소리를 지른다. 달려가 확인해보니 의사는 죽은 청년이 아가씨에 대해 완전히 오해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가씨의 방에는 몇 시간 전 비소 중독으로 고통스럽게 죽어간 여성이 있었다. 그리고 탁자 위에는 자신의 자살 동기를 분명하게 밝히는 유서가 놓여 있었는데, 그 동기란 것은 고통스러운 고독과 삶에 대한 총체적인 혐오감이었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과 따뜻함이 필요한 연초다. 어쩌면 벽이 있다는 것, 벽 너머에서 원치 않은 소리가 넘어온다는 것은 당신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벽 너머에서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할 기회가 오기나 할까? 당신은 영원히 벽을 넘어갈 문을 찾지 못하고 그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타인을 짐작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은 그 벽을 마주했을 때 어떤 이야기를 만들 것인지다. 청년은 아가씨의 신음 소리를 듣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녀에 대해 쓰고 있었다. 벽 너머로 신음 소리가 들려올 때 당신이 만들어낼 이야기, 그럼으로써 당신을 살리거나 죽게 할 이야기란 어떤 것일까.

하미나 <아무튼, 잠수> 저자

하미나 <아무튼, 잠수> 저자

<하미나 <아무튼, 잠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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