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안내를 하는 단순 업무를 챗봇이나 인공지능(AI)이 가져갔지만, 상담사들은 업무가 늘어났다고 생각하지 줄어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외환이나 기업 뱅킹처럼 난이도가 굉장히 높은 업무가 많은데 그런 업무는 줄지 않고 오히려 비대면 거래가 많아지면서 늘고 있어요. 청년 적금처럼 정부 시책이 발표될 때마다 대출 상품이 계속 늘어나면 저희 업무도 계속 늘어나거든요. 그렇게 업무의 양이 늘어난 건 보지 않고 콜 수가 줄어드니 사람을 줄여야 한다고 보는 건 굉장히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국민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라 콜센터 전반의 문제인 것 같아요. 사람은 줄어드는데 업무 난이도는 높으니 신입도 교육을 받다가 다 도망가죠.”
KB국민은행 고객센터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김현주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대전지역일반지부 지부장은 AI 도입의 영향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AI가 상담사의 업무 강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도입된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일자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1월부터 상담사 인력 감축을 유도 중이다. 정년을 맞거나 퇴사로 일하는 사람이 줄어도 더 이상 충원하지 않고 자연감소시키고 있다. 지난해 11월 콜센터 협력업체를 6곳에서 4곳으로 줄였다. 계약이 해지된 2곳의 상담사 240여명이 해고위기에 몰렸다. 국민은행 측은 “인공지능 상담이 늘고, 코로나19가 지나간 이후 영업점에서 대면 영업을 잘 진행하면서 콜센터 콜 수가 줄었다”고 이유를 들었다.
노조 측은 실제 사용자인 국민은행이 상담사를 직접 고용하라면서 국민은행 본사 앞에서 노숙 농성을 벌였다. 여론 압박이 커지자 국민은행은 지난해 12월 14일 고용노동부에 고용승계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반쪽짜리 해결이었다. 고용승계를 하기로 한 고려휴먼스는 지난해 12월 26일 고용승계 설명회에서 육아휴직자 및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사용하는 상담사의 승계는 불가능하다고 공지했다. 급여는 이미 최저임금 수준인데 더 불리한 체계로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했다. 국민은행 측은 이에 대해 “용역업체와 민법상 도급계약에 따라 수탁업체 근로자에 대한 인사노무 관련 관리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AI 학습에 동원되는 콜센터 직원들
고객센터는 AI 시스템 도입으로 고용 불안정이 커지고, 임금 수준이 낮아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경험하듯, 이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인간 상담사의 목소리를 바로 들을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AI의 안내 음성에 따라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안내 음성만 반복해 듣다가 상담사 연결을 포기하는 사례도 많다. 불편함을 느낀 고객들은 어쩌다 연결된 상담사들에게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고객들이 AI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들이 AI만 연결해줘 고객을 길들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고객 입장에선 선택권이 없는 거죠. 어르신들이 화를 많이 내세요. 왜 상담원 연결을 눌렀는데 챗봇이 받느냐는 거죠. 저희와 연결되면 ‘사람이 맞냐’는 말씀을 제일 많이 하세요. 콜 수가 준 건 고객들이 전화를 적게 해서라기보다는 상담원 연결 자체가 불편해지면서 중간에 포기하는 분이 많아진 이유도 있을 겁니다. 사용자들은 이런 건 드러내지 않고, 표면적으로 콜 수가 줄었으니 콜센터 인원을 줄이는 게 당연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채권 추심 등을 위해 상담사가 고객에게 전화를 거는 ‘아웃바운드’ 업무는 60% 정도가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대체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 건수가 적고, 대출자의 연령이 젊으면 인공지능이 전화를 건다. 대출이 여러 건이고, 대출자가 노령이면 상담사가 전화를 한다. 최근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채권추심을 AI가 할 경우 상환을 잘하지 않아 다시 상담사를 늘리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콜센터 직원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AI를 학습시키는 역할도 한다. 최근 수년 사이 고객센터를 중심으로 STT·TA(Speech To Text·Text Analytics)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국민은행도 지난해 3월부터 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고객센터 전화상담 내용을 텍스트로 변환하고, 상담 내용 분석과 유형을 자동으로 분류하는 시스템이다. 김 지부장은 “상담을 하면 제 말과 고객의 말을 텍스트화해서 기록하고, 이 데이터를 활용해 AI 시스템을 고도화한다. STT·TA 저장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콜 평가에서 감점을 하는데, 급여 감소로 이어져 사실상 강제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AI와 상담사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고민하지 않고 해고로 접근하는 것에 굉장히 분노할 수밖에 없다. 하루에 150~200콜을 받는 과중한 업무를 하고 있다. AI 도입으로 사람답게 전화를 받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경쟁하면서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콜 수가 줄었으니 사람을 줄이겠다는 그 자체가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AI 도입이 예상되는 직무를) 빨리 끊어내고 싶어서 고용형태를 용역으로 전환하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생성형 AI로 일자리 대체 본격화
자신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AI 기술을 개발하는 데 동원되는 건 구글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구글은 2021년 AI 기반 광고 제작 도구인 ‘퍼포먼스 맥스(PMax)’를 출시했다. 지난해 5월 여기에 생성형 AI를 더해 광고 제작 자동화의 효율성을 높였다. 광고주가 목표로 하는 전환율(방문객 중 회원가입·구매처럼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비율)과 고객층, 시기를 정해주면 광고 문구와 제목, 이미지와 영상을 자동으로 만들어주고, 성과 측정까지 자동으로 해준다. 텍스트 프롬프트를 사용해 원하는 내용을 찾을 때까지 텍스트와 이미지 생성을 반복할 수 있다.
생성형 AI가 광고 제작 자동화에 접목되면서 관련 업무에 이전만큼 인원이 필요하지 않게 됐다. 미국의 IT전문매체 ‘더 인포메이션’은 지난해 12월 19일(현지시간) 구글이 약 3만명에 달하는 광고 판매 직원을 대상으로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라고 보도했는데, 생성형 AI 도입에 따른 조직 개편으로 일부 부서 인력들이 해고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자신 혹은 동료가 개발한 생성형 AI 기술에 자신 혹은 동료의 일자리가 위협받게 된 셈이다.
오픈AI에 뒤지지 않기 위해 회사의 역량을 생성형 AI에 집중하면서 기존 인력을 ‘최적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아르스테크니카는 “챗GPT 등장에 ‘코드 레드’를 발동한 구글이 AI 기능과 아이디어를 내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작업이 완료되면 내부로 시선을 돌려 새 AI 기능으로 회사를 ‘최적화’하려고 시도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미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은 지난해 1월 자회사 전 부문에 걸쳐 전 직원의 약 6%인 1만2000명을 해고한 바 있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질 경우 국내 구글 직원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구글코리아 노동조합의 김종섭 지부장은 “구글 광고 판매 조직 3만명에 대한 조직개편이 예상되지만, 지난해와 같은 대규모 해고는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면서 “AI로 인한 고용시장의 변동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해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측과 적극적으로 고용안정에 대한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로봇과 같은 제조 공장의 자동화나 낮은 수준의 인공지능 기술보다 노동시장에 더 큰 충격파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맥킨지는 지난해 6월 펴낸 ‘생성형 AI의 경제적 잠재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생성형 AI는 지식노동에 가장 큰 영향력을 줄 것”이라면서 “특히 기존에 자동화 잠재력이 가장 낮았던 영역인 의사 결정 및 협력과 같은 활동이 주요 대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생성형 AI가 다양한 업무 영역에서 자연어를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연구 결과에서는 대용량 데이터를 활용해 업무를 효율화하기에 적합한 일자리는 AI 노출지수가 높았고, 대면 접촉과 관계 형성이 중요한 일자리는 AI 노출지수가 낮았다. 특히 의사와 회계사, 자산운용가, 변호사와 같은 고학력·고소득 근로자일수록 AI에 더 많이 노출돼 있다고 나타났다. 한지우 한국은행 고용분석팀 조사역은 “고졸 이하 저학력 및 중간소득 근로자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산업용 로봇이나 소프트웨어 기술과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AI가 비반복적·인지적(분석) 업무를 대체하는 데에 적합하기 때문에 고학력·고소득 일자리의 AI 대체 위험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만 고소득 전문직종의 일을 AI가 대체한다고 해도 그 영역은 전체 업무의 일부일 가능성이 크다. 김하나 변호사(민변 디지털정보위원회·법무법인 두율)는 AI가 변호사 업무를 대체하는 영역은 임대차 보증금 지급명령 신청서나 이혼 소장 작성과 같은 정형화된 일부 업무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고, 특히 권리 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영역은 새롭게 창조하거나 새로운 사례를 전문 지식으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기존의 법률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해 새로운 판례를 만들어야 한다는 시각에선 빅데이터를 기준으로 결과를 내놓는 인공지능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
AI와 노동, 정해진 미래는 없어
생성 AI 기술이 기존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지만, 한편에선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생성형 AI는 개인의 능력을 ‘증강’시켜 작업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맥킨지는 앞서 언급한 보고서에서 “생성 AI를 비롯한 업무 자동화 기술이 직원의 업무 시간을 60~70%까지 줄여줄 수 있다. 기존 추정은 자동화가 노동시간을 절반 정도 줄일 잠재력이 있다고 봤다. 기술적 자동화의 잠재력에서 가속도가 붙은 건 생성형 AI가 자연어를 이해하는 능력이 높아진 덕이 크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한 연구에 따르면 생성 AI 기반의 프로그래밍 보조 도구인 코파일럿(Copilot)을 활용하면 프로그래밍 작업을 56%쯤 더 빠르게 마칠 수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과 문서 작성, 고객 지원 등 여러 작업에서 초보자와 숙련자의 품질 차이가 줄어들었다는 연구도 여럿 나와 있다. 실제 이미 많은 직장인이 AI 기술을 실시간 통·번역과 녹취록 작성에 활용하고, PPT 제작툴을 이용해 몇 분 만에 그럴듯한 발표 자료를 만들고 있다. 콘텐츠 창작자라면 생성 AI가 만든 초안을 토대로 작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 국내 IT 기업의 한 종사자는 “오늘도 30쪽짜리 영어 논문을 생성형 AI에 넣었더니 10초 만에 요약해 알려줬다. 어려운 기술 관련 문서를 저보다 빨리 이해하고 요약해주니 도움이 많이 된다. 직무가 인공지능에 대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없지는 않지만, 기업과 노동자가 인공지능을 어떻게 이용하고 적응하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1870년대~1970년까지는 기계화, 자동화가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면서 더 나은 급여를 받으면서도 덜 위험하고, 육체적으로 덜 피곤한 선한 조합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그 긍정적 순환은 약해졌고 지난 40년간 제조로봇과 디지털 기술의 확산은 소득 양극화를 키웠다. 자동화와 노동력 대체에만 중점을 둔다면, 생성형 AI 역시 이런 불평등을 키울 수 있다. 특히 이전에 높은 임금을 받던 노동자들이 AI로 대체되고, 더 낮은 임금의 노동자들과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면 임금 수준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최순욱 너비의깊이 이사는 “(생성형 AI는)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기계나 인공지능과 근본적인 면에선 같지만 콘텐츠나 말을 대체한다는 점, 그리고 그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대비가 어렵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완전히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콘텐츠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저가의 단순노동만 하게 되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비한 안전망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AI 도입의 역사가 짧고, 더군다나 생성형 AI는 도입된 지 1년 정도 지난 시점이라 아직 고용과 임금에 미친 영향을 수치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새로 생기는 일자리도 있고 AI의 영향을 덜 받는 분야에서 일자리가 늘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수준에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기존에 있던 일자리 중 AI로 대체되는 업무가 상당하리라는 점만은 확실하다”면서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를 좀더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실업의 개념을 확대해 콜센터 직원처럼 (AI에 대체될 미래를 예상하고 회사를 나오는) 자발적 이직자에 대해서도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연구위원은 고용 규모 전망 못지않게 고용형태와 임금수준, 불평등 관련 연구가 필요하고, AI를 인사관리와 노동 감시에 사용하는 상황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대응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위원의 말처럼 AI 도입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가 정해진 미래는 아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대런 애쓰모글루는 지난해 9월 19일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에서 발표한 정책 메모에서 “생성형 AI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이 기술이 어떻게 발전되고 적용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어떤 인공지능 기술의 경로도 불가피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생성형 AI가 노동자를 대체하고, 노동자의 협상력을 줄이는 부정적 경로로 발전하지 않고, ‘인간 보완적인 기술’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을 고용하는 기업이 자동화에 투자하는 기업보다 더 높은 세 부담을 지는 구조를 바꾸고, AI 개발 방향에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