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국회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 사회자로 참여한 적이 있다. 기본소득당 노동안전특별위원회와 직장갑질119에서 활동하는 노무사들이 2022년에 산재 청구된 자살사례들에 대한 업무상 질병판정서를 분석한 결과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나는 일본의 <과로 자살>을 국내에 번역 소개한 인연으로 초대받았다.
이 책이 일본에서 처음 출판된 1998년은 일본에서 자살자 수가 사상 처음 3만명을 돌파한 해였다. 한국도 외환위기를 겪으며 자살률이 치솟았던 해였다.
과로 자살은 업무 중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자살에 이르는 것을 뜻하며, 과로사의 일종이다. 2019년에 번역서를 내면서 국내 과로 자살 현황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었는데, 이번 토론회는 빠진 퍼즐 조각을 찾아 넣는 소중한 자리였다.
발표 시간 배분을 잘해야 한다는 사회자의 임무에 충실하게, 자료집의 원고를 눈으로 따라가면서 발표를 듣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타이머를 곁눈질했다. 어느 순간 잠시 발표자의 이야기가 멈췄다. 나는 별생각 없이 눈으로 계속 원고를 읽어나갔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침묵이 길어졌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발표자 쪽을 쳐다보았다. 그는 울고 있었다. 업무상 질병 판정서에 나열된 건조한 사실과 행정 용어들 사이에서 그는 망자(亡者)들의 살아생전 고통을 읽어냈었고, 자료에 몰입하여 설명하는 동안 이를 다시 떠올렸던 것이다. 당황스러웠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몇번이나 눈물을 삼키느라 발표가 중단되었다.
눈물은 전염된다. 발표 후 이어진 토론에서 활동가들도 울먹였다. 이쯤 되니, 사회자인 나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실 정책토론회가 눈물바다가 된 것은, 소개된 대부분의 자살사례를 예방할 수 있었다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이들은 아무런 신호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니었다. 피해자들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과로와 스트레스, 일터 괴롭힘을 경험하는 동안 회사는 구조적으로 이런 상황을 조성하거나 용인했고, 문제가 알려진 이후에도 개선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죽음 말고는 이 상황을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다는 절망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사망 20분 전까지도 업무 독촉 전화를 받았다는 노동자의 마지막 20분이 과연 어떤 시간이었을지 생각하면 눈앞이 아득해진다.
한쪽에서 이렇게 눈물의 토론회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과로 사회를 꿈꾸는 이들의 열망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작년 11월 고용노동부는 6000명 규모의 대규모 면접조사를 시행하고, 이 결과를 토대로 일부 업종과 직종에 대해서 근로시간 제도를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법정 연장근로의 한도인 주간 12시간의 관리 단위를 확대하여 근로시간을 유연화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1월4일에 정부가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도 이 내용이 들어 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상반기 중 ‘근로시간 제도 개편 보완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작년 12월 대법원은 주 12시간이라는 연장근무 한도가 1일 초과분 아닌 1주간의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한다는 판례를 남겼다. 그동안 고용노동부와 노동계 모두, 1일 8시간 초과 연장근로시간의 합이 12시간을 초과하는지 여부와 주간 40시간 초과 연장근로가 12시간이 넘는지를 고려하여 근로기준법 위반을 판단했는데, 이를 대폭 완화한 것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열렬하게 반대하는데, 포기를 모른다. 포장지만 바꿔가며 계속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이 맞는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연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 일하는 사람들은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 되기를 새해 목표로 삼아야 한다. 죽지 않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일하면서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