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히 감독 출연 ‘셀프 다큐멘터리’ 영화
이란 탄압 받는 본인 처지 그대로 녹여내
배우 미나 카바니도 망명 생활 중 참여해
<노 베어스>에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이란의 한 국경마을에 머물며 튀르키예에서 진행 중인 영화 촬영을 원격으로 지휘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튀르키예의 번화가에 선 한 연인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위조 여권을 주고받는다. 남자는 여자에게 한 프랑스 여성의 분실 여권을 건네주곤 유럽으로 떠나라고 말한다. 여자는 “함께 가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며 돌아선다. 홀로 남은 남자가 담배에 불을 붙이자 누군가 외친다. “컷!”
그 순간 화면은 작아져 노트북의 작은 스크린에 띄워진다. 노트북 앞에 앉은 이란의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가 “감정을 절제하라”며 연기 지도를 한다. ‘원격 영화 촬영’은 출국 금지 상태인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10일 개봉한 <노 베어스>는 파나히 감독이 직접 출연하는 셀프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다. 그는 이란 당국의 탄압을 받는 자신의 처지를 그대로 녹여 또 하나의 예술 작품을 탄생시켰다.
영화는 파나히 감독이 이란의 한 국경 마을에 머물며 튀르키예에서 진행되는 영화 촬영을 지휘하면서 시작된다. 불안정한 인터넷 탓에 촬영은 순탄치 않다.
감독이 머무는 국경 마을은 전통과 관습을 간직한 곳이다. 마을의 청년들은 날 때부터 부모가 정한 이성과 맺어진다. 결혼을 앞둔 커플은 강가에서 서로의 발을 씻겨주는 약혼식을 치른다. 한편으로는 농사만으로 먹고살기가 어려워 튀르키예 물건을 떼다 파는 밀수꾼들을 눈감아주는 모순도 품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종일 컴퓨터만 들여다보는 도시 출신 감독을 극진히 대하지만, 경계와 적대를 숨기지는 못한다. 그 가운데 감독은 마을을 뒤흔드는 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노 베어스>에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이란의 한 국경마을에 머물며 튀르키예에서 진행 중인 영화 촬영을 원격으로 지휘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영화 속 영화의 주인공 두 사람. 박티아르(왼쪽)과 자라는 연인이다. 튀르키예에 머물고 있지만 위조 여권을 구해 유럽으로 떠나고 싶어 한다.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2010년대 이후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어 온 파나히 감독의 실험은 <노 베어스>에서 정점을 찍는다. 영화에서는 파나히 감독이 머무는 영화 밖 국경 마을과 촬영지인 튀르키예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현실, 망명을 꿈꾸는 커플이 등장하는 영화 속 영화까지 3가지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이 이야기들은 서로 맞물리면서 허구와 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이는 이란이 처한 참혹한 현실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영화 후반부 ‘맹세의 방’ 장면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마을의 남자들은 감독에게 코란 앞에서 자신의 진실을 맹세하라고 요구한다. 맹세의 방에 들어선 감독은 코란 대신 카메라 앞에서 진실을 이야기하겠다고 한다. 감독에게 무엇보다 성스러운 것은 코란이 아닌 카메라다.
<노 베어스>는 감독이 ‘목숨 걸고 만든’ 영화다. 흔한 비유가 아니다. 영화 속 출국 정지 상태에서 영화 촬영을 원격 지휘하던 감독은 영화 밖 현실에선 당국에 체포된다. 2022년 7월 영화 촬영을 끝낸 직후였다. 2010년 반체제 활동을 한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형을 살다 두 달 만에 석방됐는데, 남은 형기를 마저 채워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감독은 제79회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수상 소식도 구금 상태에서 전해 들어야 했다. 그는 옥중 단식 투쟁에 돌입한 끝에 지난해 2월 풀려났다.
영화 속 영화 ‘자라’ 역의 배우 미나 카바니도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영화에 참여했다. 그는 2014년 노출 연기를 한 뒤로 10년째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이란을 벗어날 수 없는 감독과 이란으로 들어올 수 없는 배우의 만남은 영화가 품은 강력한 아이러니 중 하나다.
러닝타임 106분. 12세 이상 관람가.
파나히 감독이 머무는 국경마을은 전통과 관습을 중시하는 곳이다. 감독은 마을을 뒤흔드는 사건에 휘말리면서 ‘맹세의 방’에 가게 된다. 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