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개발자 라프 코스터는 <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이라는 책에서 가상의 게임을 제시한다. 자, 가스실처럼 생긴 우물이 있다. 당신은 무고한 희생자들을 우물에 떨어뜨려 대량으로 학살하는 일을 한다. 희생자는 외형이 제각각이다. 어린 사람, 장성한 사람, 뚱뚱한 사람, 키 큰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이 던져진다.
바닥에 떨어진 희생자들은 우물에서 탈출하기 위해 타인을 밟고 올라선다. 만약 누가 우물 밖으로 나간다면 당신은 게임에서 진다. 하지만 희생자를 잘 떨어뜨린다면 아래에 깔린 사람들은 가스에 질식해 죽는다. 이 게임을 계속하려면 당신은 희생자를 효율적으로 죽여야 한다. 이게 전부고, 반전은 없다.
이 게임은 테트리스와 메커니즘이 똑같다. 그러나 매우 불쾌하다. 블록을 가지런히 떨어뜨리는 일과, 사람들을 학살하는 일은 경험의 종류가 판이하다. 게임의 외양은 메커니즘만큼 중요하다. 어떤 게임이 취하는 폭력성, 선정성, 잔혹성, 혐오와 차별은 플레이어의 경험을 좌우한다. 누군가는 낄낄거리며 가스실 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별다른 의미를 찾지 못하고 게임에서 소외될 것이다.
‘이건 그냥 게임일 뿐이다’나 ‘게임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은 부적절하다. 게임이 원래 그렇지는 않다. 게임에 그런 외양을 씌우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코스터의 말을 빌리면, “살인 시뮬레이터, 여성 혐오, 전통적 가치의 약화 등 게임을 둘러싼 윤리적인 질문은 게임 자체를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된다. 게임의 외양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이는 게임 제작자가 왜 게임이 현실을 반영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알려준다.
가스실 게임은 사람들을 튕겨내거나 상처 입힌다. 게임을 소수의 전유물로 만든다. 소수에 들지 않는 타인을 배제하는 방식의 플레이를 유도하고 또 공유한다.
한때 하루에 게임을 15시간씩 플레이했던 사람으로서, 게임에 상당히 지출하고 신경 써본 사람으로서, 나는 지금도 게임을 사랑한다. 그것은 게임이 파워 판타지, 혹은 말초적 자극을 제공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을 마음대로 썰고 다닐 수 있어서, 현질할수록 레벨업이 편해서, 여자 가슴과 엉덩이가 큼직하게 출렁거려서 등의 이유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쾌감은 게임을 즐기게 해줄 순 있지만 ‘내 인생의 게임’을 꼽게 해주진 않는다. 게임이 진정으로 의미를 품고 뇌리에 꽂히는 경험을 제공하진 않는다.
게임은 강력한 도구다. 다른 매체와 달리 플레이어는 게임의 진행에 직접 참여한다. 게임 플레이를 학습하며 게임에 녹아든 다양한 전제를 새로이 익힌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로 유명한 마셜 매클루언은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에서 게임의 예술성을 말한다. “게임은 익숙한 경험을 새로운 형태로 바꿈으로써, 사물의 어두침침한 부분에 갑작스러운 새 빛을 비추어” 주는 매체다. 그리고 “우리를 틀에 박힌 일상과 관습에서 오는 현실의 압력에서 한 걸음 비켜설 수 있도록 해주고, 그것을 관찰하고 의문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게임은 그럴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