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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 나쁜 정치

입력 2024.01.15 20:08

  • 이대근 우석대 교수

한동훈은 한국 정치에서 하나의 사건이다. 대통령의 젊은 측근이 어느 날 갑자기 집권당 대표이자 전권을 쥔 총선 사령탑이 되더니, 금세 유망한 정치 지도자로 부상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벌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 선두 경쟁을 한다. 윤석열 대통령 말에 시큰둥하던 사람들도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주목한다. 집권당 의원, 당원, 지지자들은 이 정치 신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기꺼이 그의 지도를 받아들인다.

정치 경험 없는 인물의 대선 직행은 실패한다는 불문율을 깬 윤 대통령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후배 검사를 통해 대선에 이은 또 다른 승리를 손에 쥐려는 꿈이다. ‘윤석열 성공 모델’, 재현될지 모른다. 한국 정치의 오랜 관행과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한동훈은 윤 대통령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다. 하나는 보수층이 강조하는, ‘똑똑하다’ ‘젊다’라는 긍정적 특성이다. 보수층은 그런 장점이 윤 대통령 단점을 보완해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덜 똑똑하거나, 늙어서 정권위기가 온 게 아니다. 그게 중요했다면, 이준석 전 당대표를 붙잡아야 했다.

다른 하나는 야당에 대한 효과적인 공격이다. 한동훈처럼 야당, 야당 지도자를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만드는 재능이 있는 정치인은 없었다. 그 재능은 그에게 정치팬덤을 안겨줬다. 그러나 그의 정치팬덤은 야당 지지율 상승은 막아도, 대통령·여당 지지율 하락은 막지 못했다. 윤 대통령 집권은 살아 있는 권력과 맞선 결과지만, 한동훈 부상은 죽은 권력 때리기의 부산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동훈이라는 사건은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다. 정치팬덤은 두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정치적 양극화의 연료이며, 양극화는 정치팬덤에 영양분을 제공한다. 야당 공격, 팬덤, 양극화는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양극화 세상에서는 정치 유망주로 성장하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비전, 정책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부정적 감정 유발만으로 충분하다.

이 현실에서 정치는 별 쓸모가 없다. 한동훈은 선당후사를 선민후사로 바꿨다. 민심을 강조하는 수사학으로서는 문제없지만, 그가 정당을 정치의 주체로 인식했으면서도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권력자는 흔히 ‘국민’의 이름으로 전횡을 해왔다.

윤 대통령도 국정을 정치나 이념으로 하지 않겠다고 여러 번 말했다. 정말 그는 대화 거부, 일방통행, 야당 공격과 전 정부 비난, 국회 무시로 자기 말을 실행하고 있다. 검찰총장보다 더 강한 대통령 권력이 정치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치는 귀찮고 까다로운 일이라고 느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윤 대통령과 달리, 한동훈은 나름대로 정치 감각도 있고, 정치적 제스처에도 능하다. 그러나 지지자와 사진 찍기, 재래시장에서 떡볶이 먹기, 1992 맨투맨 티셔츠 입기는 정치 흉내다. 정부 실정 외면, 야당 조롱도 정치가 아니다. 그게 정치라면 나쁜 정치다.

지금 해야 할 것은 정치하는 척하는 게 아니라, 정치하는 것이다. 정치는 이견을 다루는 일이다. 다양한 이해와 의견을 조정하고 타협하며 합의를 만드는 게 정치다. 윤 대통령이 당면한 인구소멸, 지방소멸, 경제불안,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은 모두 야당을 존중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그 반대로 했고, 결국, 국정위기가 왔다. 윤석열 집권은 성공 모델이 아니라 실패 모델이다.

한동훈은 ‘윤석열 실패’를 피할 수 있을까? 지금 그는 ‘이기는 정당’을 목표로 뛰고 있다. 야당이 가진 권력을 가져오면, 의회권력만 추가하면 위기가 사라질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그러나 양극화 상황에서 승리는 정치 지도자의 비전이 될 수 없다. 승리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승리는 상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최면을 걸어서라도 쟁취하고자 하는 그 무엇이다. 이런 혐오 경쟁에서 승리는 상대에 대한 적대 행위를 정당화해준다. 승리, 새로운 대결의 신호다. 정치 부재와 그로 인한 삶의 위기가 지속될 것이다. ‘동료 시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많은 과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표류할 것이다. 이렇게 승리는 재난의 씨앗이 된다. 통치 불가능성에 빠진 윤석열 정부가 증명한다.

패배로부터 얻을 것은 있지만, 승리로부터 얻을 것은 없다. 누구의 승리도 축하해주고 싶지 않다.

이대근 우석대 교수

이대근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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