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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같은 대만 민주주의

입력 2024.01.17 19:52

수정 2024.01.1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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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는 감격적이다. 동아시아 민주주의의 성숙한 모습을 세계에 과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와 독재의 ‘가치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독재국가의 큰형 격인 중국의 코앞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 멋지다.

여기서 근대 동아시아 헌정사를 잠시 살펴보자. 군현제(郡縣制)보다 봉건제 사회에서 신분제가 더욱 강고하게 유지되었다는 점은 알려진 대로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신분의회에서 출발한 의회제가 조선, 중국 같은 군현제보다 유럽, 일본 같은 봉건제 국가에서 발생하고 쉽게 수용된 것은 이해될 만하다. 물론 일본도 메이지유신에서 의회 설립까지 23년이 걸렸고, 1903년까지 5차례의 의회 폐쇄 위기가 있었지만, 군국주의 때도 미군점령기에도 결국 폐쇄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반면 한국과 중국의 헌정 도입은 난항이었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군주 측이 헌정 도입(내각, 의회 창설)을 군주권 제약으로 경계했기 때문이다(박훈 <근대초기 한중일에서의 헌정의 수용양태 비교시론>). 일본은 중세 이래 천황이 정치권력에서 한발 물러나 있었다는 점, 또 헌정 도입기에 메이지천황이 아직 어린 나이(10대 후반)였다는 우연까지 겹쳐, 궁중과 부중(府中·정부)의 분리(즉 내각제도 도입), 그리고 의회 설치에 군주 측의 반대가 거의 없었다. 반면 조선(고종, 민비)과 중국(광서제, 서태후)의 경우는 달랐다. 청조는 1906년경 시도한 책임내각 도입 과정에서 큰 난관에 부딪혔다. 개혁파인 위안스카이가 내각의 총리대신이 되어 군주권을 제한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갑오개혁기에 일본의 군사력을 배경으로 내각이 설치되었는데, 이 갑오내각에 고종과 민비는 적대적이었다. 독립협회 설립 후 왕권 견제 움직임이 더욱 강화되자 군주 측은 독립협회의 리더 윤치호가 대통령이 되려 한다는 풍문을 퍼뜨려 이를 분쇄했다. 참고로 제정 러시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보인다. 1905년 혁명 후 온건파 세르게이 비테는 내각 구성과 총리의 권한 강화를 주장했다. 이를 차르의 권력 제한으로 여긴 군주 측은 비테가 러시아공화국을 만들어 대통령이 되려 한다고 의심하며 저항했다(제프리 호스킹, <러시아의 헌법 실험: 정부와 두마 1907-1914>).

의회는커녕 제대로 된 책임내각조차 거부하던 청조는 혁명의 된서리를 맞았다. 그러나 황제는 사라졌지만 헌법과 의회는 수립되지 않았다. ‘우민들이 선출한 돼지 같은 의원’들을 불신한 쑨원은 군정-훈정-헌정을 단계적으로 실시하자며 사실상 헌정을 포기했다. 그 후 중국에서는 수많은 헌법이 명멸했으나 쑨원과 장제스의 훈정은 중국공산당의 훈정으로 이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을 뿐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13일 다시 한번 그 고운 자태를 드러낸 대만 헌정의 값어치를 실감하게 된다.

조선의 고종은 내각제도도 약식의회도 거부하고, 태연히 조선이 전제국(專制國)임을 선포하더니(<대한국국제>, 1899) 병합의 된서리를 맞았다. 하긴 나라는 망했지만 이왕가(李王家)는 해방 때까지 호의호식했으니 그에게는 ‘된서리’까지는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국인은 헌법이나 의회 비슷한 것조차 가져보지 못한 채 1945년을 맞았다.

이렇게 보면 1980년대 중반에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한국과 대만의 민주주의 회복과 그 후에 전개된 정치사는 기적 같은 일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 민주주의가 ‘유권자가 선택한 일당지배’로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현실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 유난히 선거가 많다고 한다. 미국, 유럽 등 민주주의 본고장이 예전 같지 않은 지금, 보석 같은 이웃나라의 민주주의에 존경을 바친다. 새 총통께도 축하를 전한다. 아직 이름은 못 외웠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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