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평화를 기원하며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건강과 소원 성취를 기원한다. 하지만 최근 북쪽으로부터 전해진 메시지에는 증오와 분노가 서려 있었다. 연초부터 북한은 악담과 포격 도발로 덕담과 새해 인사를 대신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면서, “조선반도에서 언제든지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남반부 전 영토를 평정하려는 우리 군대의 강력한 군사행동에 보조를 맞춰나갈 준비”를 강조했다. 물론 북한의 도발이 어제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 발언이 사실이든 위협에 불과하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한반도 정세는 악화될 수밖에 없다. 또한 국내외의 향후 한반도 정세 예측과 전망도 불안을 가중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적대적 기운이 비단 한반도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한반도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세상은 지금 분노와 증오의 불길 한가운데 있는 듯하다.

작년 10월7일 발발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은 그 짧은 기간 동안 참혹한 수준의 희생자를 낳았다. 미국 언론 CNN이 가자지구 보건부의 통계를 인용 보도한 것에 따르면 이번 전쟁으로 인한 이스라엘 사망자는 1200명,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사망자 수는 2만4285명에 달한다. 이 통계에 따르면 군인이 아닌 무고한 민간인 피해자가 75%를 차지하고, 그중 어린이가 무려 1만600명이나 된다. 100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이니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될지 안타까울 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전쟁이 여기에 그치지 않고 헤즈볼라나 이란의 참전으로까지 확전될 여지가 충분하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도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공방전이 이어지면서,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간혹 휴전 협상 소식이 뉴스로 전해지지만, 또 다른 형태의 전쟁 유지 수단인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해 12월12일 미국 정보보고서를 인용해 이번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군 사망자와 부상자 수가 31만5000명이라고 전했고,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 사망자 수가 7만명(2023년 8월)에 이른다고 추산하면서 실제 수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불과 지난 1~2년 사이에 일어난 전쟁에서 상상을 넘어서는 살육이 자행되고 있다. 갈등과 대립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만을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대립도 언제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하기 어렵다. 반도체를 비롯한 다양한 경제적 이해관계 혹은 패권을 차지하려는 강대국 간의 힘겨루기는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또한 최근 예멘의 후티 반군은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포위를 해제할 것을 요구하면서 홍해 봉쇄를 선언했다. 곧이어 후티 반군이 민간 선박을 공격하면서 미군의 미사일 대응이 시작되었고 확전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렇듯 전 세계 곳곳에서 서로 총구를 들이대고 분노와 증오의 언어를 내뱉고 있다.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릴 기세다. 이대로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도 좋을까. 불가에는 ‘화리생련(火裏生蓮)’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불꽃 속에서 연꽃을 피운다는 뜻이다. 세상이 화염에 휩싸이고 잿더미로 변해가는 가운데에서도 덩달아 분노와 증오 혹은 탐욕의 불길에 사로잡히지 말고, 자비의 연꽃을 피워야 한다. 분노와 증오의 불길 속에 살아가는 것은 가자지구나 키이우 주민들만이 아닐 것이다. 동정의 시선으로 본다면 폭격에 피투성이가 된 가자지구나 키이우의 어린이들이 먼 나라 누군가의 아들·딸이겠지만, 자비와 연민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들은 내 자식 혹은 바로 나 자신일 수 있다.

‘세계 평화’라는 말이 상투적이고 식상한 구호처럼 들린 적도 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세계 평화’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화두처럼 다가온다. 해가 바뀔 때마다 바람은 달라지지만, ‘평화’야말로 올 한 해 우리의 가장 절실한 소원이 아닐까 싶다. 간곡히 또 간곡히 전쟁을 멈추고 총구를 내려놓기를 호소하고 기도한다.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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