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문제에 대해 “국민이 걱정할 만한 부분이 있다”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실과 친윤계 의원들은 한 위원장 발언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정치공작’으로 몰아가고 있다. 친윤 세력의 이런 태도는 여전히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는 처사이다.
한 위원장이 김 여사 문제에 우려를 표명한 것은 처음이다. 총선을 앞두고 수도권 위기론이 깊어지고 있어 김 여사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음직하다. 한 위원장은 지난 18일 “기본적으로 함정 몰카”라고 전제하면서도 국민 눈높이를 대응 기준으로 제시했다. 대통령실은 이튿날 “(재미교포가) 치밀한 기획 속에 영부인을 불법 촬영했다”는 입장을 냈고, 한 위원장 발언에도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고 한다. 그 후 한 위원장은 “사건의 본질은 부당한 정치공작”이라는 윤재옥 원내대표를 만난 뒤 “저와 윤 원내대표의 목소리가 다르지 않다”고 입장이 갈팡질팡했다. 21일엔 친윤계가 명품백 의혹을 지적한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공천 문제 등과 관련해 한 위원장 사퇴를 요구했는데, 대통령실 의중도 반영됐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에 한 위원장은 언론 공지를 통해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고 했다. 한 위원장 리더십과 당정관계가 중대 고비를 맞은 셈이다.
김 여사가 받은 가방은 정상 외교나 공식 행사에서 전달된 게 아니다. 김 여사가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서 몰래 받았고, 청탁금지법 위반 의혹이 불가피하다는 게 사건의 본질이다. 국민은 김 여사가 받은 명품백을 가리키는데 여권은 선물을 준 사람이 문제이지, 받은 사람이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본질을 억지로 비틀고 있으니, 국민을 납득시킬 리 만무하다.
김 여사 리스크로 윤 대통령 신년기자회견도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김 여사 질문이 쏟아질 게 뻔한 기자회견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에선 그 대안으로 대통령실 출입기자들과의 ‘김치찌개 오찬’이 거론되다 이젠 특정 언론과 단독 인터뷰가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선택적으로 질문받고 하고픈 말만 하는 건 소통이 아니다. 이런 방식으론 ‘김건희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 문제를 요리조리 회피할 궁리만 할 때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 후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해서는 안 된다”고 했던 말을 잊었는가. 윤 대통령은 더 늦기 전에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 눈높이에서 진솔하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그런 입장 표명 없이 특별감찰관 임명이나 제2부속실 설치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한낱 꼼수로 여겨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