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금산 화학제품 공장서 ‘불산’ 누출
소송 낸 주민 1명당 700만원 지급 확정
피해자 ‘증명 부담’ 완화한 첫 대법 판결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한수빈 기자
공장의 유해물질 누출 때문에 피해가 발생할 만한 개연성이 있다면 공장 운영자가 피해자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환경오염 피해 소송에서 환경오염과 피해의 인과관계에 대한 피해자의 증명 부담을 완화한 첫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황모씨 등 19명이 반도체용 화학제품 제조업체 A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황씨 등이 일부 승소인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24일 밝혔다.
황씨 등은 2016년 6월4일 A사가 운영하는 충남 금산의 공장에서 불산 누출 사고가 발생해 인근 마을에 거주하던 자신들이 기침, 가래, 두통, 호흡기 질환 등을 앓았다며 2017년 2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기존 판례는 A사에 배상 책임을 물으려면 공장에서 배출된 유해물질이 피해자에게 도달해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피해자들이 각각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시행된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은 제9조1항에서 “시설이 환경오염 피해 발생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때에는 그 시설로 인해 환경오염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했다.
원심은 유출된 불산이 기체 상대로 공기 중으로 확산됐다가 지표면으로 낙하해 원고들에게 피해를 줬다고 볼 만한 개연성이 있다며 불산 누출 사고와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이에 따라 A사가 원고들에게 위자료를 7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수긍했다. 대법원은 “전체적으로 보아 시설의 설치·운영과 관련해 배출된 오염물질 등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 및 재산에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면 그 시설과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추정된다”고 밝혔다. 시설의 가동과정, 사용된 설비, 투입되거나 배출된 물질의 종류와 농도, 기상조건, 피해발생의 시간과 장소, 피해자의 양상 등을 따져 배상 책임을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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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이때 해당 시설에서 배출된 오염물질 등이 피해자나 피해물건에 도달해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반드시 직접 증명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A사 건에서도 피해가 발생할 만한 개연성이 있었으므로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게 맞다고 했다.
대법원 측은 “이번 판결은 환경오염피해구제법상 배상책임에서 인과관계가 쟁점이 된 첫 사건”이라며 “기존 선례에 비해 피해자의 인과관계 증명부담을 완화해 인과관계 추정 법리를 처음으로 선언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