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패딩을 입어야 할까, 코트만으로 괜찮을까?’ 날씨 예보에 저절로 귀가 기울어지는 요즘, 그의 목소리에 무조건 반사처럼 귀가 쫑긋 선다. ‘날씨의 여신’ KBS 기상캐스터 강아랑이다. “이번주는 미세먼지 예보가 있으니 마스크를 꼭 지참하고 다니세요.” 날씨를 미리 아는 자, 강아랑씨의 가방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그의 날씨 예보는 군더더기가 없다. 귀에 쏙쏙 박히는 중저음으로 큰 표정 변화 없이 날씨 정보를 전하는 데 집중한다. 방송 초기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5, 6년 전 강씨는 스스로 ‘웃지 않는 기상캐스터’가 되기로 했다. 특별한 신념 때문이다.
“날씨는 신뢰가 필요한 정보고 누군가에게는 생업이 달린 문제잖아요? 예를 들어 농사짓는 분들은 내일 적절한 비가 왔으면 좋겠지만, 나들이를 준비하시는 분들은 화창한 날씨를 원하죠.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희비가 갈리는 정보를 웃으면서 전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기상재난 상황이 점점 느는 요즘은 더욱 진지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좀 상냥하게 날씨를 말해주면 안 되냐’는 일부 시청자들의 의견이 있어 기회가 되면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KBS의 대대적인 인사이동에도 자리를 굳건히 지킨 방송국 간판 기상캐스터 강씨. 그는 날씨 예보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전에는 기업 세 곳에서 사내 방송을 진행하고 오후 4시가 되면 국회로 달려가 <국회라이브6> <여심저격> 등 라이브 방송을 진행한다. 그리고 오후 6시가 되면 저녁 뉴스 날씨 예보를 준비하기 위해 방송국 보도국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퇴근 시간은 오후 9시를 훌쩍 넘긴다. 온종일 바쁜 일정에 뛰어다니다 보니 그는 절로 ‘보부상’이 됐다.
강씨는 의상 스타일에 맞춘 멋스러운 가방보다는 수납 기능에 충실한 가방을 주로 들고 다닌다. 인터뷰 당일 들고나온 다소 낡은 가방에는 그의 특별한 사연이 담겨 있다. 2014년 제84회 전국춘향선발대회 미스춘향 미로 당선된 직후 부산의 고향 친구들이 선물한 생애 첫 ‘명품 가방’이다.
“친구들이 20만원씩 십시일반 모아 제 생일날 선물해줬어요. 방송하면 유명해질 텐데 인터넷에서 산 만원짜리 가방 말고 튼튼하고 멋진 백 하나는 있어야 ‘면이 서지 않겠냐’면서요. 그 가방을 10년 넘게 쓰고 있어요. 낡긴 했지만 아직 튼튼해요.”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강씨가 직접 만든 2024년 달력과 사랑의 열매 기부 브로치다. 좋은 일은 나누면 배가 된다. 그가 가방 속 아이템 중 가장 먼저 내세우고 싶은 물건이다. 그는 매년 자신이 만든 달력 판매 수익금을 기부하고 있다. 올해 1000만원을 더해 4년간 총 3500만원의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요즘 가지고 다니며 읽는 책은 오유경 전 KBS 아나운서의 <어른 연습>이다. 그는 ‘어른이란 삶의 마지막까지 더 나아지려는 사람이다’라는 글귀에 공감한다.
“나이를 먹고 받는 ‘똑똑하고 야무지다’는 평가는 더는 칭찬이 아니라고 하잖아요. 저 역시 결혼한 지 1년이 됐고 시니어 위치로 가는 과정에서 남들에게 넉넉하고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열심히 ‘어른 연습’ 중입니다.”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강아지 인형 열쇠고리 재료도 가지고 다닌다. 틈이 날 때마다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한다. ‘금손의 향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카메라 앞에 서기 위해 꼭 챙기는 것이 기초 보습제다.
“방송 스튜디오는 엄청나게 건조한 곳이에요. 특성상 가습기를 켤 수 없고 쨍한 조명 아래에서 말을 많이 하다 보니 피부와 입술이 건조해져 미스트, 립밤, 보습제, 핸드크림은 빼놓고 다닐 수 없어요. 수시로 뿌리고 바르기 위해 대용량은 필수죠.”
그의 가방 속 보습제는 좀 남다르다. 무려 강아지용 보습제다. 피부과 전공 수의사 남편의 권유로 바르기 시작했다. 피부가 약한 강아지가 바르는 순한 보습제라 그 역시 ‘애용’하고 있단다.
지난해 2월 강씨는 결혼이라는 경사도 있었지만 한 달 만에 교통사고를 당하는 아찔한 사건도 겪었다. 신호등 없는 건널목을 건너던 중 급작스럽게 유턴하는 차량에 치여 무릎과 발목을 크게 다쳤다. 여전히 후유증이 남았다.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건강이라는 걸 새삼 느꼈어요. 사고 직후부터 EMS라는 근력 운동을 꾸준히 했고 다행히 빨리 회복된 편이에요. 물론 비가 오는 날은 ‘무릎이 쑤시는구나’ 싶은 통증이 있어요. 기상캐스터보다 할머니들이 날씨를 더 잘 안다고 하잖아요? ‘할머니 관절’까지 갖춘 완벽한 기상캐스터가 된 거죠(웃음).”
강씨는 “기상캐스터로만 안다면 저를 반밖에 모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상캐스터, 뉴스 앵커, 토론 진행자 그리고 영상 크리에이터…. 하루에도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선다. 건강과 체력이 우선이라는 것을 몸소 실감하고 있다. 불규칙한 스케줄로 피로 누적에 시달렸던 그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일주일에 세 번 20분간 고강도 러닝을 시작했다.
“혼자 살 때는 밥도 제대로 안 차려 먹었는데 결혼하고 서로의 일을 응원하는 동지를 만나면서 건강한 식단을 먹으려 노력해요. 아침에는 샐러드와 현미밥을 먹고 과일은 주스 형태보다는 생으로 먹어요. 최근에는 닭가슴살도 주문했어요.”
그의 하루를 책임지는 묵직한 가방을 가볍게 둘러메고 다음 스케줄 장소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경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