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앞으로 5년 동안 건강보험의 운영 방향을 ‘필수의료 강화’로 잡았다. 보건복지부는 4일 발표한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24~2028)’에서 재정 10조원 이상을 투입해 “필수의료 분야 수가를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국민 생명과 직결되지만 병원들이 적자를 본다며 기피하는 필수의료에 대한 보상체계를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재정을 축내는 주범으로 지목돼 도덕적 해이 논란을 부른 비급여·급여 혼합진료는 제한할 방침이다. 그간 건보 적용을 늘려 의료비 부담 완화에 주력해온 데서 기조를 완전히 바꾼 것이다.
이번 계획은 필수의료 수가 인상, 건보재정 효율화 등이 핵심이다. 우선 수가를 손질해 필수의료 수가를 더 올리고, 분만이나 소아진료 등에 공공정책 수가를 도입해 의료행위의 난이도·지역 격차 등을 반영하기로 했다. 현행 양적 보상체계를 의료의 질을 중시하는 체계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은 바람직하다.
정부는 비급여 시장에도 칼을 빼들었다. 비급여·급여 섞어 진료하는 혼합진료는 금지하겠다고 했다. 백내장 수술·도수치료가 대표적이다. 다만 규제 대상이 되는 비급여 항목이 무엇인지, 적용 시점이 언제인지는 향후 구성될 보건의료개혁특위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비급여 항목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 많아 현장 정착까지 적잖은 갈등이 예상된다. 필수의료 수가 기준을 구체화하지 않으면, 피부과·성형외과 등의 의사 쏠림 현상도 막기 어렵다.
이 계획을 추진하려면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 소요된다. 하지만 계획안엔 구체적 재원이 빠져 있다. 복지부는 “2026년부터 건보재정이 당기수지 적자로 전환할 것으로 추계할 수 있지만 수입·지출 변화에 따라 다양한 전망이 가능하다”고만 적었다. 하지만 노인 인구가 급격히 늘면 정부 예상보다 더 빨리 건보재정이 악화될 수 있다. 아니면 현행 보험료율(7.09%)을 올려야 하는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정부는 줄곧 재정 효율화를 강조해왔다. 이에 못지않게 국민 의료비 부담을 덜고 혜택을 늘리는 보장성 강화도 함께 가야 한다. ‘지출 효율화’만 강조하다가는 가뜩이나 취약한 건보 보장성을 더 후퇴시킬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의료체계를 개혁해 의료 질을 향상시키고 건보재정 건전성을 꾀하되, 절감된 재원으로는 의료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두껍게 지원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