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스웨덴 말뫼에 갔을 때 일이다. 말뫼의 랜드마크 ‘터닝 토르소’ 전망대에 오르니 옛 조선소 자리가 한눈에 보였다. 1990년대 초 이 조선소가 문을 닫는 바람에 쇠락할 뻔했던 말뫼는 유럽 청년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혁신적 도시가 됐다. 조선소 부지 대부분은 재생에너지를 100% 활용하는 주택단지 등으로 탈바꿈했다. 그런데 몇몇 구획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당시 혁신을 이끌었던 일마 리팔루 전 시장의 답은 이랬다.
“넓은 지역을 한꺼번에 개발해서 인구가 일시에 들어오면 어린이집과 학교 수요가 급증합니다.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다음 단계 시설은 계속 부족하고 지나온 시설은 남아돌게 되고요. 그래서 여러 구역으로 나눠 단계적으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그리 고차원적 예측도 아닌 당연한 이야기다. 신도시를 개발할 때마다 수천수만 가구를 지어놓기만 할 뿐 돌봄이며 교육 공백은 각자 알아서 할 일로 치부해온 한국 현실이 씁쓸할 뿐이었다.
22대 총선을 두 달여 앞두고 여야가 내놓은 1호 공약이 모두 ‘저출생 대책’이다. 그 내용을 보니 신혼부부 대출, 아동수당, 보육 지원, 육아휴직 급여 인상 등 대부분 현금 지원 형식이다. 이 정책들이 이번에는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그 효과도 의심스럽지만, 성공해도 문제다. 기적적 변화로 2030년 합계출산율이 1.5명이 됐다고 가정해보자. 합계출산율이 2.1명보다 낮으면 인구는 줄어들게 되므로 이것도 ‘절반의 성공’이라 할지 모르나, 1.5의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부모 인구 감소를 감안해서 계산해도 2030년에 45만명 정도가 태어난다는 뜻이다. 2022년 출생아 25만명보다 20만명 증가하는 것인데, 이 아이들은 어느 산부인과에서 태어날 것이며 어느 소아과에서 진료받고, 어느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 갈 수 있을까? 그동안 이 시설들은 수익구조가 조금만 흔들려도 문을 닫아왔고 정부는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아이들이 줄어들수록 시설과 인력은 더 모자라는 구조가 됐는데, 출생아가 급격히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정말 아이들이 더 태어나기를 원한다면 그에 맞춘 공공 인프라 확보도 함께 계획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서 “아이를 더 낳으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다. 하나는 정책 설계자들조차 그 효과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 말만 듣고 아이를 낳는 사람은 곧 지옥 같은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 맡길 데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다 부모 중 한 명의 경력이 단절되고, 예상치 못한 지출이 이어진 끝에 노후 빈곤을 맞이하는 미래, 이것이 두려워 지금도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데 이런 사회가 더 심화된다는 의미다.
예전 자료를 찾아보니 합계출산율이 1.5명 이하로 막 내려가던 2000년대 초에도 각종 양육 지원책들이 쏟아졌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차라리 지금 정책들이 그때쯤 과감하게 시도됐더라면 나았을지 모르나 이제는 늦었다. 출생아가 확 늘어나서 현재의 경제와 사회 구조를 지탱해주길 바라는 건 판타지다. 이제는 인구 감소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사회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고민이 담기지 않은 공약에는 ‘선심성’이라는 말조차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