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대통령실 청사에서 박장범 KBS 앵커와 대담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방송된 KBS 대담에서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국정 현안도 짚었지만, 국민이 듣고 싶은 말보다 하고 싶은 말만 쏟아냈다. 윤 대통령이 왜 불통 소리를 듣고 국민에게서 멀어지고 있는지를 스스로 보여줬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 명품백 수수를 재미교포 최재영 목사가 의도적으로 접근한 “몰래카메라 정치공작”으로 규정했다. 그 만남을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게 문제라면 문제”라고, 허술한 대통령실 경호는 주민 불편 때문에 검색기를 설치하지 못한 탓이라고 했다. 국민들이 ‘대통령 부인이 비공식 자리에서 고가의 선물을 왜 받았는지 묻는’ 것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과는커녕 유감 표명조차 없이 “아쉽다”는 말만 반복했다. 몰카 찍은 사람이 잘못한 것이지, 모르고 명품백을 받은 ‘피해자’가 무슨 죄가 있냐는 식이다. 26년 검사 경력인 윤 대통령 논리가 ‘몰카 무죄론’이라니 어이가 없다. 일반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아도 몰카이고 의도성을 몰랐다면 무죄라는 건가.
대통령은 국민적 의혹엔 국민 눈높이에 맞춰 진솔하게 설명하고, 재발방지책도 제시해야 한다. 특별감찰관은 국회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제2부속실은 검토 중이지만 예방에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얼렁뚱땅 소낙비나 피해보겠다는 걸로 볼 수밖에 없다. 김 여사는 윤 대통령조차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인 건지 묻게 된다.
윤 대통령은 경제, 교육, 복지, 외교안보 등 분야별 국정 구상을 밝혔다. “최우선 국정 과제”로 저출생 문제 해결을 꼽았지만, 구체적 대책은 없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정부의 준비 부족을 반성하지 않고 유예 요청을 거부한 야당에 책임을 떠넘겼다. 제1 야당 대표와의 만남을 거부한 이유를 ‘여당 무시’라고 했고, 낮은 국정 지지도에는 “고금리에 다른 정상들 지지율도 많이 떨어졌다”고 했다. 실패한 국정기조를 성찰하지 않고 자기 합리화에 급급하며 집권 3년 차에도 ‘마이웨이 국정’을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94분간의 대담을 보니, 대통령실이 왜 KBS를 고른 줄 알겠다. KBS가 사흘 전 녹화하고 편집한 방송에서 질문은 무디고, 회피성 답변에도 재질문은 없었다. KBS 앵커는 국가기록물로 격상된 300만원짜리 디올백을 ‘파우치’ ‘조그만 백’ 등 별것 아닌 식으로 표현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사건과 관련한 대통령실 개입 의혹 등과 같이 언론사 기자회견이라면 응당 나왔을 질문은 없었다. KBS는 공영방송이 아니라 국정홍보 대행사로 전락했다.
윤 대통령은 앞서 “국민 뜻을 받들겠다 “국민은 늘 옳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를 실천하려면 대통령은 국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소통을 해야 한다. 불통은 국민들에게서 멀어지고 국정 동력도 떨어뜨린다. 윤 대통령이 3년 남은 임기를 불통으로 일관한다면 실패한 정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