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정치면을 펼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돈을 쓰자’는 얘기가 나오면 틀림없다. 선거가 임박했다는 얘기다. 지속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구조개혁만이 대한민국의 명운을 결정지을 것이라던 목소리들이 무슨 숙청이라도 당한 것처럼 일제히 치워진다. 대신 소외된 서민들과 불균형한 지역발전에 대한 재발견이 잇따르며, 돈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박애의 경쟁이 시작된다. 바야흐로 ‘표(票)퓰리즘’의 계절이다.
우리가 흔히 대중영합주의로 읽는 포퓰리즘은 사실 너무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기 때문에 정치학자들도 한 가지 형태로 정의내리기 어려워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실제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부유세 강화를 주장했던 버니 샌더스나 이민자 추방과 보호무역을 주장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상대 진영에서는 모두 포퓰리스트 취급을 받았을 만큼 정형화된 모습이 없다.
이 포퓰리즘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로마 공화정 말기 그라쿠스 형제가 추진했던 개혁정책을 출발점으로 찾는 의견이 적지 않다. 그라쿠스 형제는 귀족이 독식한 농지를 재분배하고, 밀을 사들여 시민들에게 싸게 공급하려고 했는데, 이들 형제의 개혁안을 지지하는 이들을 ‘다수를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포퓰라레스’로 부른 것이 포퓰리스트의 시초라는 설명이다.
인종이나 이민자 이슈가 덜한 한국 사회는, 미국이나 유럽과는 달리 이 그라쿠스 형제 시절의 원초적인 포퓰리즘과 유사한 대목이 적지 않다. 특히 진보 진영의 경우에는 재정 투입을 통한 보편복지나 재분배를 주요한 담론으로 다뤘는데, 이 때문에 보수 진영으로부터 늘 포퓰리스트라는 딱지가 붙어왔다.
그런데 최근 이 같은 흐름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4·10 총선을 앞둔 보수 진영에서의 변화다.
당장 정부·여당이 소득 상위 20%를 제외한 모든 대학생에게 국가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국가장학금은 대학생이 속한 가구의 소득·재산에 따라 장학금을 차등 지급하는 제도인데, 지금보다 지급 범위를 더 넓혀 전체 대학생의 80%에게 장학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당장 연간 수조원에 달하는 재원이 추가로 투입된다. 장학금 지급 확대의 긍정적인 측면에 더해 대학을 다니지 않는 청년들과의 차별 문제, 지출 확대에 따른 재정 부담이 당연히 고려돼야 하지만, 정부의 시선은 한쪽에만 머물러 있다.
재원이 부족해 과거에 폐지됐던 재형저축도 다시 등장했다. 이자소득세가 면제되는 재형저축은 1976년 도입 당시 연 10%가 넘는 높은 금리를 제공해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1995년 재원 부족으로 판매가 중단됐고,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잠깐 부활했다 역시 재원 문제로 1년여 만에 폐지됐는데, 총선을 앞두고 부활시키겠다는 것이다.
재정건전성을 금과옥조로 연구·개발(R&D) 예산을 비롯해 ‘역대급’ 예산 칼질을 실행해온 정부·여당의 표변인데, 기본소득 등으로 원조 포퓰리즘 딱지가 붙어있는 야당마저 “정부·여당이 연일 선거용 선심 정책, 인기영합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지난해 종합부동산세, 법인세 인하에 이어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 주식 대주주 양도세 기준 완화, 임시투자세액공제 연장 등 잇단 감세 추진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재정여건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지난해에는 56조원이 넘는 세수 부족을 겪었는데, 세수 여건이 여전히 나빠 올해에 2년 전보다도 세금이 더 적게 걷힐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가 허구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지만, 그 누구도 입에 담지 못하고, 밑 빠진 독에서 계속 물을 길어올리겠다는 봉이 김선달들만 넘쳐나는 셈이다.
결과는 명확하다. 누군가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그 누군가는 미래세대다. 최근 경제학계 연구결과를 보면 국가 재정 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2000년 이후 태어난 세대는 생애소득의 41%를 세금으로 내야 할 것으로 추산됐다. 1950~1960년대생은 생애소득의 10~15% 정도만 세금으로 냈다.
전 세대를 위해 그들보다 3배에서 4배에 달하는 세금을 감당해야 할 미래세대에게 과연 대한민국은 여전히 멋진 조국일 수 있을까. 무엇보다 미래 본인들의 소득으로 펑펑 생색을 내고 있는 정치권을 보면서 탈한국을 꿈꾸지 않는 젊은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