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2월 13일자 경향신문 사설 ‘임신 노동자 과로 막는 것도 저출생 해법이다’를 재가공하였습니다.>
유·사산을 겪은 여성 노동자 70%가 임신기간 중 노동시간·업무량을 조절할 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과로, 야간 근무 등 장시간 노동이 임신 유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데도 모성보호 정책이 직장 내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임신 노동자를 보호하고 유·사산을 겪은 여성 노동자 회복을 돕는 노동환경,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유·사산을 겪은 노동자 8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 노동시간이 길수록 관련 업무가 임신 유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업무와 유·사산 간 관련성을 인정한 응답자들의 노동시간은 약 9시간으로, 연관성이 없다고 답한 이들보다 1시간 정도 더 많았다. 이들 중 70%가 하루 8시간 이상 일했고, 54%는 휴일 근무를 경험했다. 70% 넘는 이들이 회사 근로시간을 변경할 수 없었다고 응답했다. 근로기준법은 임신기간 연장·야간·휴일 근무를 제한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모성보호제도가 작동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임신 노동자의 업무량이 많을 경우 쉬운 업무로 교체해야 하는데도 현실은 달랐다. 대체 인력 부재(65%), 휴가 사용 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 때문(25%)이라는 이유가 컸다. 제도는 있어도 시행되지 않거나 임신을 개인 문제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10년간 산업재해로 인정된 유·사산 사례가 고작 10건에 그친 것도 놀랍다.
초저출생 시대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여야가 앞다퉈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임신한 여성 노동자를 과로하지 않도록 챙기는 것도 제대로 못한다면 출생률이 올라갈 리 없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임신부가 건강에 위험이 있다고 평가가 내려진 업무를 수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행 법률도 유·사산을 겪은 여성 노동자의 회복을 돕는 다양한 지원책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 현장에선 제도를 이용하기도 어렵거니와 그에 따른 차별과 불이익이 발생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유·사산을 예방하기 위해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1일 2시간)을 임신 전 기간으로 확대하는 등 직장 내 모성보호제도 확대는 물론 제도가 제대로 활용되는지 근로감독도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모성보호제도 도입 기업에 대한 지원과 여성 노동자의 유·사산 예방 교육 등에도 나설 것을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