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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코끼리의 죽음

입력 2024.02.15 19:22

수정 2024.02.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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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령 코끼리 ‘사쿠라’의 생전 모습. 서울대공원 제공

국내 최고령 코끼리 ‘사쿠라’의 생전 모습. 서울대공원 제공

조선시대에 코끼리가 있었다. 실록에 나오는 얘기다. 일본에서 건너온 코끼리가 엄청난 식성으로 식량을 축내다 사람을 해치는 사고까지 쳐서 귀양갔다는 사연이다. 태종 11년(1411년), 일본이 조선에 선물한 코끼리 한 마리가 한양에 도착했다. 처음 보는 괴물 같은 형상에 모두 놀랐다. 명색이 왕실 선물인지라 군용 말을 키우는 관청에서 돌보게 했는데, 이 짐승이 날마다 18~20시간 동안 콩 네댓말씩을 먹어치우는 바람에 골치를 앓았다고 한다. 그러다 이듬해 코끼리가 인명사고를 낸다. “전직 관리 이우가 코끼리 모습이 추하다 비웃고 침을 뱉었는데 코끼리가 노하여 밟아 죽였다”고 태종실록에 나온다. 태종은 이 코끼리를 전라도 외딴섬 장도로 유배를 보낸다.

쓸모없는 애물단지에다 살인 동물로 낙인찍힌 이 코끼리의 기구한 사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유배 2년 뒤, 전라도 관찰사가 “장도의 코끼리가 좀처럼 먹지 않아 날로 수척해지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립니다”라는 상소를 올린 덕에 육지로 풀려났지만, 전라도에 이어 경상도·충청도 각지를 전전하는 떠돌이 신세가 됐다. 이후 세종 3년(1421년), 충청도 공주에서 먹이를 주던 사육사를 또 해치고 만다. 이에 세종은 코끼리를 사형에 처하는 대신 장도로 다시 돌려보내며 “물과 풀이 좋은 곳에 내어 놓고, 병들어 죽지 말게 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 코끼리는 이듬해 숨을 거두며 조선 땅의 한 많은 10여년 생을 마감했다.

1965년생, 59세. 사람 나이로 치면 90세쯤이라고 한다. 서울대공원의 마스코트 중 하나였던 국내 최고령 코끼리 ‘사쿠라’가 지난 13일 세상을 떠났다. 태국에서 태어난 뒤 7개월 만에 일본으로 옮겨 가서 근 40년 동안 서커스단에서 일하다 2003년 한국에 온 코끼리다. 무리 생활을 겪지 못하고 자란 탓에 줄곧 외롭게 생활하다 지난해 겨울부터 질병에 시달렸고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조선의 코끼리는 슬프고 힘겨웠어도 해피엔드를 맞았다. 서커스단도, 동물원도 아닌 물과 풀이 좋은 곳에서 눈을 감았으니까. 노년에도 건강히 지내고, 다른 코끼리들과 무리 생활을 하며 희망을 보여줬던 사쿠라도 이제 서커스 없는 하늘에서 편히 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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