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억이나 생각을 인터넷에 업로드하거나 다운로드할 수 있을까? 최근 놀라운 뉴스가 전해졌다. 지난달 29일 일론 머스크는 자신이 설립한 뇌신경과학 스타트업인 뉴럴링크에서 “사지마비 환자의 뇌에 인공 칩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고, 환자는 현재 무사히 회복 중”이라고 발표했다. 이 인공 칩은 이른바 ‘텔레파시’란 이름의 컴퓨터 칩 제품이다. 이에 앞서 뉴럴링크는 지난해 5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시험 실시를 허가받았다. 인간의 생각만으로 컴퓨터 키보드나 스마트폰 같은 외부 디지털 기기를 작동시킨다는 구상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상상 속 이야기였다. 이제 일론 머스크는 기어이 이 기술을 인간에게 적용할 심산인 듯하다.
이 기술은 이른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Brain Computer Interface)’에 기반한다. 혹자는 ‘뇌 임플란트’라고도 부른다. 뇌에서 나오는 전기신호를 스캐닝하고 이 신호를 외부 장치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일종의 컴퓨터 칩을 뇌에 이식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전신마비 환자들도 뇌 속에 칩을 이식하고 이 칩과 연결된 외골격 로봇을 장착하고 있으면 뇌의 전기 신호를 인식해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외부에서 뇌에 신호를 주는 것도 가능하다. 일각에선 시각 피질의 신경세포를 모방해서 뇌에 전달함으로써 시력 기능을 회복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일론 머스크는 향후 “우리가 특별하다고 믿는 것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외국어 능력 등 다양한 두뇌 정보나 기억 등을 외부에서 가져와 인간의 능력을 향상 혹은 증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이 기술 개발이 가속화된 배경으론 인공지능 기술의 비약적 발전이 거론된다. 일론 머스크는 인공지능을 인류의 큰 위협으로 간주하면서 인공지능이 세상을 장악하기 전 인류가 인공지능에 맞설 수 있는 초지능과 초운동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의 이러한 접근이 바람직한 시도인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많다.
산승의 눈에도 이러한 변화가 당혹스럽긴 매한가지다. 고전적 종교 관념 속에서 보자면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고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또 다른 형태의 인간 욕망의 확장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도 그의 책 <호모데우스>에서 “인간의 몸과 뇌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마음을 잃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뉴스를 접하면서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는데, 고승들의 깨달음이라는 두뇌 정보도 업로드하거나 다운로드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지 하는 의문이다. 만약 깨달은 스승의 깨달음이라는 상태를 이 기술을 통해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면, 그 다운로드를 받은 자를 깨달은 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다운로드를 받아서 깨달은 자에게 우월한 종교적 권위 혹은 윤리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정당할까? 예전 같았으면 어른 스님께 망상 피운다고 죽비로 한 대 얻어맞을 만한 의문이지만, 갈수록 만화 같은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우려를 거두기가 어렵다.
해인사에선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정초기도가 시작된다. 매년 이맘때면 전국 각지의 불자들 혹은 불자가 아니더라도 남녀노소 안 가리고 저마다의 새해 소원을 마음에 품고 절에 와서 기도에 동참한다. 모두 불단 앞에서 합장하고 진지하게 기도하는 모습이 간절해 보인다. 스님들은 매일 새벽부터 하루 네 번씩 차가운 법당 바닥에 꿇어앉아 몇 시간씩 염불과 진언을 이어간다. 새해, 새 마음으로 온 세상 평화와 뭇 삶들의 행복을 기원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이렇게 마음을 내어 기도하는 그 마음, 그 발심(發心)도 과연 업로드할 수 있을까? 그것을 따지기 전에,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그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즉 그 두뇌 정보가 생성되기 이전 상태가 어떠한지를 참구해 보는 게 급선무일 것이다. 생각이 컴퓨터와 연결되는 시대, 그 생각은 어디서 왔을까? 그 생각, 그 정보가 생겨나기 이전 모습은 어떠한가? 입춘이 지났지만 가야산 새벽 공기는 여전히 시리고, 차갑다. 보일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