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번엔 KAIST 학위수여식, 대통령에게 ‘R&D 예산’ 따졌다고 들어내다니

18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학위수여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을 항의한 학생이 대통령실 경호처 요원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윤 대통령이 축사하는 도중에 졸업생이 연단을 향해 큰소리를 외치자, 경호원들이 그의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든 채 식장 밖으로 끌고 나간 것이다. 지난달 18일 윤 대통령이 참석한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 행사장에서 국정기조 변화를 요구한 강성희 진보당 의원을 강제로 끌어낸 뒤 불과 한 달만에 생긴 일이다. 그때도 대통령실에서 일언반구 사과조차 없더니 또 다시 국민 입을 틀어막고 들어내는 사건이 벌어졌다.

대통령실 경호처는 “경호 구역 내에서의 경호 안전 확보 및 행사장 질서 확립을 위해 소란 행위자를 분리 조치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돌발사태는 윤 대통령으로부터 근접거리도 아닌 아주 먼 장소에서 벌어졌다. 아무런 신체적 위협 상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잉 경호조치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이 곳은 윤 대통령이 행사의 주최자가 아니라 엄연히 학생들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자리다. 이 무대의 주인공은 졸업생이다. 그렇다면 카이스트 졸업생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경청하는 것이 윤 대통령의 마땅한 자세 아닌가.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연구 카르텔’ 운운하며 R&D 예산을 무려 5조여원(16.6%)를 삭감한 정부 예산안을 내놓았다. 1991년 이후 정부 R&D예산이 처음 격감한 돌변적 조치였다. 그후 과학·연구계의 반발과 야당 반대에 ‘찔끔 순증’으로 입막음했지만, 그 후유증은 예산 집행이 시작된 지금 R&D 현장에서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과학기술 연구를 강조하기 위해 카이스트를 방문해 R&D 예산 삭감을 항의한 대학생의 입을 막은 것은 겉 다르고 속 다른 행동이 될 수 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올해 전국을 돌며 나흘 간격으로 11차례나 연 민생토론회에서 일방적으로 감세·지역·SOC 정책 등을 홍보해 ‘총선용 선거 개입’ 시비를 키우고 있다. 반대로 쓴 목소리가 나오는 장소는 피하고 있다. 도어 스테핑(출근길 문답)은 임기 첫해 중단했고, 올핸 신년 기자회견을 피해 KBS 신년대담으로 때워 버렸다. 좋은 말만 듣고 쓴 말은 듣지 않겠다는 건 불통과 독단이다. 국민과 소통하겠다면 마땅히 비판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 언제까지 쓴소리하고 항의하는 시민을 안 보이는 곳으로 들어내는 식으로 대응할 건가.

카이스트(KAIST) 졸업생이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학위수여식 행사에서 쫓겨나고 있다. 독자 제공

카이스트(KAIST) 졸업생이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학위수여식 행사에서 쫓겨나고 있다. 독자 제공


Today`s HOT
영국에서 열린 '성 패트릭 데이' 월식 전의 보름달, 관람하고자 모인 사람들 마이애미 비치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이스라엘 유대인들을 위한 명절, '푸림'
유소년 선수들 만난 이글스 스타 콘 바클리 기차를 끌어 기네스 인증 받은 레슬링 선수 마흐루스
안개가 자욱한 호주 캔버라의 모습 갑작스런 토네이도로 아수라장된 피코 리베라
BNP 파리바 여자 테니스 경기 우승자, 벨린다 벤치치 아세안 국가 중 GDP 성장 최고인 베트남의 모습 인도 홀리 축제 준비하는 사람들 나폴리서 규모 4.4 지진, 새벽부터 놀란 시민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