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렉세이 나발니 사망 하루 뒤인 17일(현지시간) 시민들이 러시아 모스크바의 ‘슬픔의벽’에 꽃을 놓고 있다. AF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자 야권 지도자였던 알렉세이 나발니가 사망한 이후 러시아에서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1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이들에게 허락된 건 ‘조용한 애도’ 뿐이었다. 시민들은 옛소련의 정치탄압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추모비 등에 꽃과 초를 놓으며 나발니를 추모했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집회·시위를 엄격하게 금지해왔다. 나발니의 사망소식이 알려지자 당국은 애도 물결이 확산하는 등 여론이 술렁일 것을 우려해 집회 단속을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모스크바 검찰은 전날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자는 메시지가 온라인에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행정당국과 조율되지 않은 것이니 유의하라”고 경고했다.

17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나발니를 추모하기 위해 정치 탄압 희생자 추모비에 헌화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경고에도 나발니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과거 정치 탄압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모스크바의 ‘추모의벽’ 등 상징물들 앞에는 시민들이 두고 간 꽃들이 수북히 쌓였고, 인근 꽃집 앞에 줄을 선 시민들은 바깥으로 이어졌다. 경찰들은 조문객들이 한 명씩만 접근하도록 허용하겠다며 추모를 마친 이들은 즉시 떠나라고 요구했다.
자신을 스베틀라나라고만 밝힌 한 여성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꽃을 놓고 사진을 찍고 성호를 긋고 울면서 떠나는 것이 전부지만 이 정도만 해도 요즘 같은 시절에는 큰 용기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추모를 하다 경찰에 붙잡히는 사례도 속출했다. 러시아 시민단체 ‘OVD-info’에 따르면 나발니 사망 이후 러시아 32개 도시에서 4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추모 집회중에 체포됐다. 이는 2022년 9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강제동원 반대 시위에서 1300여명이 체포된 이후 가장 큰 규모다.

17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정치범 수용소 기념비에서 나발니에게 헌화하려던 남성을 경찰이 제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7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정치탄압 희생자 기념비에서 나발니에 헌화하려던 남성이 경찰에 붙잡혀 끌려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얼굴을 가린 남성들이 시민들이 놓은 꽃다발을 검은 쓰레기 봉투에 쓸어담는 모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확산하기도 했다. 외신들은 이들중 일부가 경찰의 감독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 당국이 쏟아지는 시민들의 슬픔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지 않으려는 신호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FT는 “나발니가 사망 후에도 크렘린궁에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16일 베를린 주재 러시아 대사관 앞에 모인 시위대가 “독재자 없는 러시아”와 “나발니는 죽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해외에서도 러시아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추모 집회가 확산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독일 베를린에는 경찰 추산 500여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이들은 나발니의 사진 앞에 촛불을 켜고 꽃을 놓으며 추모했고, “러시아가 살인을 저지른다” “푸틴을 헤이그로”라고 외쳤다.

16일 브뤼셀에서 열린 나발니 추모지회에서 시민들이 나발니의 초상화를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17일 영국 런던의 러시아 대사관 밖에서 시민들이 나발니에 애도를 표하기 위해 꽃을 놓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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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인들이 대거 이주했던 도시 중 하나인 조지아의 트빌리시에서도 추모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푸틴을 향한 분노가 담긴 문구뿐 아니라 “포기하지 말자”는 희망의 문구가 적힌 포스터를 들기도 했다. 이날 거리에 모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으로 추모집회에 참석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밖에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네덜란드 헤이그, 폴란드 바르샤바 등 유럽 전역에서 나발니를 추모하고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는 집회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