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일 사표를 수리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후임을 지명하지 않았다. 여가부는 신영숙 차관 직무대행 체제로 바뀐다. 애초 인적자원관리 전문가인 신 차관은 석 달 전 차관 임명 때부터 여가부 폐지용 인력 배치라는 관측이 나왔다. 윤 대통령이 여소야대 국회에서 여가부 폐지를 담은 정부조직법 처리가 어려워지자, 편법으로 ‘차관부처’로 강등·무력화시킨 것과 다름없다.
여가부 폐지 논란은 윤 대통령이 대선 때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 공약을 내면서 시작됐다. 물러난 김 장관은 “마지막 장관”이 되는 소임을 다하겠다는 아이러니한 취임 일성을 남겼고, 국제적 망신을 야기한 새만금 잼버리 파행 후 사표를 제출했다. 그 후 장관 후보로 지명한 김행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청문회 도중 낙마했다. 그러곤 그제 후임자 지명 없이 김 장관 사표를 수리한 것이다. 문책이라고 하기엔 때늦고, 부처 정상화도 아닌 차관 체제는 윤 대통령의 ‘몽니 인사’로 볼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책임장관제 도입’을 천명했다. 부처 장관에게 전권을 부여하고 결과에 책임지도록 하겠다고 했다. 김 장관 사표의 늑장 수리와 차관체제 전환으로 이 말은 식언이 됐다. 당장 차관체제 전환을 두고는 총선용 시비가 불거지고 있다. 총선 앞에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는 새 장관 인사청문회는 피하고, 총선 승리 시 여가부를 폐지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총선에 재차 내걸었다는 해석이 붙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총선 후 출범할 22대 국회에서 부총리급 인구부를 신설하겠다고 예고했다. 여가부 폐지를 전제로, 그 업무를 흡수해 저출생 대책을 종합 관리할 컨트롤타워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인구 컨트롤타워 구축은 필요하다. 하지만 국가적으로 성평등 목표가 삭제되면, 저출생 대책은 반쪽이 될 수밖에 없다. 저출생 극복을 위해서는 성적 고정관념과 일자리 등에서의 차별이 남아 있는 사회·문화·관행을 바꾸는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 현 정부 출범 후 이미 성평등 예산이 삭감되고 성인권 교육이 사실상 폐지됐다. 여기에 차관부처로까지 강등되면, 여가부 직원들의 사기 저하와 무력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여가부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고, 그 존폐 문제는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 윤 대통령은 정부조직법 취지를 어긴 편법적인 여가부 차관체제 전환을 철회하기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 힘 대선후보였던 2022년 1월 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새만금 잼버리 파행으로 사의를 표명한지 반년만에 물러나는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