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너무 늦었다. 운동선수가 해야 할 수술을 미루다가 주요경기 직전에 환부가 터지고 만 격이다. 환부는 더불어민주당의 지난 대선 패배 원인 문제다. 기이하게도, 대선에서 패배하고도, 그것도 촛불항쟁에 의한 박근혜 탄핵 덕으로 집권한 민주당이 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단 5년 만에 대선에서 패배해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키고도, 뼈아픈 패배 원인에 대한 냉철한 분석, 이에 기초한 자성과 쇄신이 없었다. 아니 최근 한 언론보도로 처음 알려졌듯이, 민주당이 대선백서를 만들기는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치열한 당내 논쟁을 통해 만든 것이 아니라 백서를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당에서조차도 거의 없을 정도로 형식적인 평가에 불과했고 이를 공론화해 당을 쇄신하려는 노력도 더더욱 없었다. 대신 당을 지배한 것은 ‘졌지만 잘 싸웠다’(‘졌잘싸’)라는 집단최면이었다. 특히 지난 대선은 단순한 민주당의 패배를 넘어서 역사적인 촛불항쟁을 ‘한때의 해프닝’으로 말아먹은 엄청난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촛불시민들에게 자기성찰을 보여주는 최소한의 책임마저 저버렸다. 이처럼 덮어뒀던 대선 패배 원인 문제가 총선후보 공천을 놓고 뒤늦게 폭발하고 만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비서실장을 한 임종석, 노영민의 공천신청 등과 관련해, “본의 아니게 윤석열 검찰정권 탄생에 원인을 제공한 분들 역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는 공천관계자의 발언이 기폭제가 되고 말았다. 정작 했어야 할 대선 논쟁이 ‘밥그릇’ 문제가 대두되고서야 뒤늦게 터져 나온 것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논쟁 방향이다. 논쟁은 실정과 선거, 팬덤정치 등 근본적 문제가 아니라 ‘누가 윤 대통령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해 키워줬느냐’는 지엽적인 추천 책임 문제에 초점이 맞춰졌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문 전 대통령을 잘못 보필한 두 비서실장의 불출마를 촉구하자 임 전 실장은 법무부 장관으로 윤석열을 징계해 키워준 것은 추 전 장관이라고 반박했다. 진짜 문제는 누가 윤석열을 키워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 다수 국민들이 정치 문외한인 윤석열, 그것도 사실상 5년 전 탄핵을 당한 보수당의 후보로 나선 그를 찍었느냐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진지한 논쟁을 한 적이 없다.
다행인 것은 논쟁이 격화되면서 논쟁방향이 제대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친이재명(친명) 진영에서는 대선에서 진 것은 부동산정책, 소득주도성장, 조국사태 등 문재인 정부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임종석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가 모든 것을 잘하지는 못했”지만 “대선 패배와 윤석열 탄생의 책임이 문재인 정부에 있다는 인식에 동의하지 않”는바, 그 이유로 대선 당시 문 정부가 보여준 높은 지지율을 제시하고 있다. 친문재인(친문) 진영에서는 “선거는 기본적으로 후보가 치르는 것”으로 “윤석열 정부 탄생 일등공신이 이재명 대표가 아니면 누구냐”며 “중도층이 이재명 후보가 싫어서 이탈한 것”이 문제였다는 이재명 책임론으로 맞받아치고 있다. 민주당의 대선백서는 문 정부의 높은 국정지지율 때문에 문 정부와 제대로 차별화를 하지 못한 것을 패배 원인으로 지적하면서도 이재명 후보 자체에 대한 평가는 전혀 없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진작 치열한 논쟁을 통해 규명했어야 할 문제를 소위 ‘개딸’ 등 이 대표 강성지지층이 주도하는 ‘졌잘싸’의 분위기 속에 묻어줬다가 선거를 코앞에 앞두고 밥그릇을 놓고서야 뒤늦게 싸우고 있는 행태이다. 물론 현재의 논쟁은 때늦었고 선거가 코앞이다. 그러나 기왕 논쟁이 터진 이상, 선거와는 별개로, 논쟁을 건설적인 대선과 쇄신논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번 기회에 탄핵을 정의당, 안철수, 유승민 등 ‘개혁적 보수세력’과 함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촛불연정’이 아니라 승자독식으로 나가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도 위성정당을 만든 탐욕, 집값 폭등 등 무능, 조국사태로 상징되는 위선과 오만, 각종 ‘사법리스크’로 나타난 부패, 정당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팬덤정치 등에 대해 냉철하게 분석하고 발본적인 쇄신을 해야 한다. 논쟁을 다시 봉합하다가는, 오는 대선 등에서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쇄신이 아니라 ‘민주진보진영선거연합’이란 이름 아래 또다시 위성정당이나 만들고 ‘사천’ 논란에 박용진 같은 ‘우수의원’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최하위 점수를 주는 등 ‘비명 제거’에 나섬으로써 대선 논쟁이 애당초 쇄신이 아니라 이재명의 향후 도전자 제거를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갖게 한다. 답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