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바오 할부지’에게 듣는 ‘판다 가족 이야기’ “은근하게 스며들기, 이 작전이 통했죠”

맹수계 삼신 할배 강철원 사육사

강철원 사육사. 서성일 선임기자

강철원 사육사. 서성일 선임기자

‘특별한’ 곰 다섯 마리가 한국에 있다. 에버랜드에 살고 있는 자이언트 판다 가족 아이바오, 러바오, 푸바오, 루이바오, 후이바오다. 2016년 한국 땅을 밟은 암컷 아이바오와 수컷 러바오가 2020년 2세 만들기에 성공하면서 ‘곰 세 마리’ 구성이 됐고, 지난해 쌍둥이가 태어나 다복한 다섯 식구가 완성됐다. 자연임신이 어려운 동물로 알려진 판다 부부의 결실 뒤에는 에버랜드 판다 전담팀의 노력이 숨어 있다. 특히 ‘푸바오 할부지’로 유명해진 강철원 사육사는 판다 이전엔 백호, 오랑우탄 자연 번식을 성공시키며 ‘맹수계 삼신 할배’라는 별명을 얻었다.

첫째 푸바오는 4년 만에 얻은 귀한 딸
애교·장꾸미 뿜뿜
나와 ‘케미’ 잘 맞아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판다월드에서 ‘푸바오’가 대나무를 씹고 있다. 사진 서성일 선임기자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판다월드에서 ‘푸바오’가 대나무를 씹고 있다. 사진 서성일 선임기자

지난 15일 에버랜드 판다월드에서 강 사육사를 만났다. “판다는 내 운명”이라고 밝힌 그는 “아이바오와 러바오가 한국에 적응만 잘해줘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는데 푸바오를 낳게 됐을 때 30여년 사육사 인생의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강 사육사는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학창 시절 자연농원(에버랜드 전신)에 다니던 선배의 취업설명회를 들으며 운명처럼 자연농원 사육사의 길을 걸었다. 그의 동물사랑은 종에 국한되지 않았다. 호랑이, 사자와 같은 맹수부터 오랑우탄과 같은 유인원까지 그가 에버랜드에서 돌본 동물은 80종을 넘어선다.

그중에서도 판다는 그의 사육사 인생 정점을 장식했다. 1994년 막내 사육사 시절 한국에 처음 온 판다 밍밍과 리리를 맡아 돌봤다. 외환위기로 밍밍과 리리가 중국으로 돌아갈 때도 김포공항까지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강 사육사는 “2월이었는데 정말 날씨가 추웠고, 그만큼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판다와의 인연은 끝이 아니다. 판다가 한국을 떠난 지 18년 만에 다시 에버랜드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는 자신이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판다를 돌봤던 경험이 있는 데다 삼성물산 내부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중국 현지에서 중국어와 문화를 익혀둔 덕이었다. 그는 “2016년 아이바오와 러바오를 데려오기 위해 중국 판다 서식지에서 두 달간 체류했다”며 “중국어와 문화를 아니까 현지 사육사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때 그는 한국에서 헤어졌던 판다 리리를 다시 만나기도 했다. 강 사육사는 “리리라고 이름을 불러주니까 와서 아는 체를 했다. 동물들도 자신을 아껴준 존재를 쉽게 잊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동글동글한 외모 덕에 유순한 동물로 보이지만, 사실 판다는 맹수다. 원래 육식동물이었는데, 진화 과정을 거쳐서 대나무 잎을 먹는 채식 동물이 됐다. 흡수율이 낮아 대나무를 하루 10~12시간을 섭취해야 한다. 강 사육사는 “화를 내면 에너지 소비가 많이 되기 때문에 갈등 상황을 피하는 편이지만 판다의 공격성이 발현되면 곰처럼 사람에게 위협적일 수 있다”며 “그래서 성체 판다들을 대할 때 사육사들도 펜스 밖에서 접촉한다”고 했다.

아빠 러바오는 중국에 있을 때도 ‘인싸’
사람을 워낙 좋아해서 처음 만나자마자 친구처럼 대해줘

아빠 판다 러바오. 에버랜드 제공

아빠 판다 러바오. 에버랜드 제공

그는 아이바오와 러바오를 처음 만나던 때를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는 “러바오는 당시 중국에서도 인기 있는 판다였는데, 사람을 워낙 좋아해서 처음 보는 나를 친구처럼 대해줬다”고 회상했다. 반면 아이바오는 예민한 성격이었다. 한국에 오고 난 뒤에도 사육장 옆에서 밤을 지새우며 아이바오의 적응을 도왔다. 강 사육사는 “판다가 비슷비슷하게 생겼지만 성격은 서로 다르다”면서 “아이바오는 쉽게 마음을 주지 않지만 한번 마음을 열면 정을 깊게 주는 ‘츤데레’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한국에 온 뒤 4년이 지나도록 아이바오의 임신을 서두르지 않았다. 판다는 가임기가 1년에 1~3일에 불과하고, 혼자 있는 습성이 있어 짝짓기가 쉽지 않은 동물이다. 그는 “아이바오와 러바오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 서로 전혀 모르던 사이였다”며 “섣불리 두 판다를 만나게 했다가 오히려 거부감이 커져 다시는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강 사육사는 판다 부부가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은근하게 스며드는’ 전략을 택했다. 처음엔 서로의 채취 정도만 익숙해지도록 했고 아주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게끔 했다. 특히 암컷인 아이바오가 2세를 가질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됐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아이바오가 러바오와의 만남에도 거부감을 표하지 않을 때 ‘이때다 싶어’ 합방을 성사시켰다. 그렇게 2020년 국내 최초 자연 번식 출생 판다 ‘푸바오’가 탄생했다. 강 사육사는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지 않나.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야 한다. 조급해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그는 다른 맹수들까지 자연 임신에 성공시킨 ‘삼신 할배’의 비결을 ‘천천히, 자연스럽게’로 꼽았다.다행히 아이바오는 첫 출산임에도 푸바오에게 모유를 먹이며 강한 모성애를 보여줬다. 아이바오가 푸바오를 잘 키울 수 있도록 사육사들은 보조포육 등으로 도왔다. 푸바오는 사육사를 마치 친할아버지처럼 따랐다. 그는 “푸바오는 장난꾸러기이긴 한데 애교가 많고 사육사와 ‘케미’가 좋다”면서 “안으면 품에 쏙 들어오고, 의사 표현도 똑 부러지게 한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딸 쌍둥이 루이바오, 후이바오
언니 루이는 순둥 순둥
동생 후이는 거친 마성의 소유자

엄마 아이바오가 쌍둥이 아기판다들을 돌보고 있다. 에버랜드 제공

엄마 아이바오가 쌍둥이 아기판다들을 돌보고 있다. 에버랜드 제공

푸바오에 이어 판다월드에는 또 한 번 겹경사 소식이 이어졌다. 지난해 아이바오가 쌍둥이 자매를 출산한 것이다. 루이바오·후이바오 쌍둥이 임신 때는 혈액·소변 검사 등 판다들의 호르몬 변화 데이터를 푸바오 때와 견줘 과학적으로 분석하며 출산 성공 확률을 높였다. 초보 엄마임에도 첫째 푸바오 육아를 능숙하게 해낸 아이바오지만, 사육사들은 쌍둥이 소식에 걱정이 앞섰다. 자연 상태에서 판다는 쌍둥이가 태어나면 더 미숙한 새끼는 포기하고 건강한 새끼 한 마리만 키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쌍둥이 중 한 마리씩 교대로 아이바오와 사육사가 번갈아 돌봤다. 아이바오에게 새끼를 돌려보내기 전에 미리 엄마 분변 등 채취를 묻혀 자신의 새끼라는 것을 인식하게 했다. 현재 아이바오는 쌍둥이에게 젖을 물리는 것은 물론 나무 타기, 대나무 먹기 등 기본적인 ‘판생’ 교육을 하고 있다. 쌍둥이들이 위험하다고 느낄 땐 직접 나서서 제지하고 혼내기도 한다. 새로운 판다월드의 귀염둥이로 떠오르고 있는 쌍둥이는 외모는 판박이지만, 성격은 정반대다. 강 사육사는 “루이바오는 조용하고 얌전하지만 푸바오처럼 사육사에게 폭 안기는 스타일”이라면서 “막내 후이바오는 성격이 활달하고 사육사가 안으면 몸부림치는 거친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곧 안타까운 이별을 앞두고 있다. 해외에서 태어난 판다들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따라 만 4세가 되기 전에 중국의 판다 서식지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곧 네 살이 되는 푸바오도 예외는 아니다. 푸바오는 중국행 준비를 위해 다음달 3일까지만 판다월드 방사장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푸바오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한 ‘오픈런’부터 매일 찾아오는 ‘회전문’ 관객까지, 판다월드를 찾는 발길은 최근 더 늘어났다. 현재 사육사들은 푸바오가 판다월드에서의 즐거웠던 순간을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평소 좋아했던 대나무 장난감을 다시 만들어 주고, 해먹, 벤치 등 인리치먼트(행동풍부화) 스폿을 다채롭게 조성해주고 있다. 매년 봄 푸바오에게 만들어 줬던 유채꽃 화단도 더욱 풍성하게 꾸몄다.

강 사육사는 “사육사에게도 동물과의 이별이 가장 힘들다”면서도 “하지만 푸바오가 판다 서식지로 돌아가 짝을 만나고 ‘판생’을 펼치는 것도 중요하다”고 애써 덤덤하게 이별을 받아들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푸바오에게 인사말을 남겼다.

엄마 아이바오는 ‘예민 보스’지만
마음을 열면 정 깊게 주는 스타일

엄마 판다 아이바오. 에버랜드 제공

엄마 판다 아이바오. 에버랜드 제공

“푸바오야. 엄마 아이바오가 워낙 똑똑해서 딸을 잘 키웠어. 푸바오는 엄마로부터 빼어난 미모와 빠른 상황 적응 능력을 물려받았단다. 푸바오는 어딜 가든 잘 적응할 거야. 지금까지 사육사 할부지와 한국 팬들에게 받은 사랑만큼, 앞으로 더 많은 사랑을 받을 거란다. 우리는 그리움을 안고 푸바오를 평생 응원할게. 18년 만에 재회한 리리처럼 푸바오와도 꼭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거야. 푸바오가 중국 현지로 돌아가는 길도 할부지가 동행하며 배웅할게. 너는 우리의 영원한 아기 판다야. 사랑해.”

“할부지 건강하세요~”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판다월드에서 첫째 푸바오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서성일 선임기자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판다월드에서 첫째 푸바오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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